내 몸의 경고, 그리고 관계와 나의 회복

정작 나는 내 검사 결과를 못 본 내과의사였다

by 김보민

둘째를 임신했던 전공의 2년차 때였다. 당직은 격일로 있었고 당직을 서는 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당직이 없는 날도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는 내가 직접 콜을 받고 노티 받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일과가 끝나도 집에 가지 못하고 딱딱하고 좁은 병원 침대에서 남산만 한 배를 좌측 측와위로 뉘이고 쪽잠을 잤다. (내가 옆으로 누운 불상처럼 생겼다고 동기들이 붙여준 별명도 있었다. 바로 ‘와불(臥佛)’.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별명이었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임신은 말 그대로 ‘사치’ 같았다. 임신하면 잠이 몰려온다. 피로도 3배, 졸음도 3배. 나는 뱃속의 아기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믹스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씩 마시며 버텼다.

‘지금은 그냥 넘겨야 해. 지금은 버텨야 해.’

그게 매일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주문 같았다.

결국 산전 초음파에서 태아 부정맥 소견이 나왔고, 정밀 초음파 화면에 비친 아기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잘못 만나서 너만 고생이구나...”

뒤늦게 커피를 끊었지만 이미 마음은 무너져 있었다. 뒤늦은 후회였지만, 그래도 더 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교수님들은 내가 내과 의사니까 검사 결과 정도는 알아서 챙길 거라 생각하셨다. 나는 환자 검사 결과는 꼼꼼히 보면서도 정작 내 것은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한 달 반이나 지나서야, 내가 임신성 당뇨라는 걸 알게 됐다. 교수님이 한마디 하셨다.

“야, 넌 내과 의사면서 니 당뇨 걸린 줄 몰랐냐?”

나는 속으로 외쳤다.

“교수님도 안 보셨잖아요... 근데 나도 나를 안 봤어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내가 무책임한 건 아닐까? ‘엄마 자격’을 잃은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단순히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한 문장이면 충분했는데, 그때의 나는 그 단순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로 나는 환자들에게 말한다.

“몸은 정직해요. 신호를 무시하면 언젠가 고장나요. 그러니까 제일 먼저 당신 자신부터 챙기세요.”

그 말은 사실 지금도 내가 나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몸의 신호를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관계의 회복, 그리고 정체성의 회복이다.


아이 셋을 3년간 전업주부처럼 키우면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동네에서는 늘 “○○ 엄마”로 불렸고, 거울 속엔 화장기 없는 초췌한 얼굴과 예전보다 늘어난 몸무게만 남았다. 예전엔 밤새 응급실에서 환자를 살려내며, “죽은 사람도 내일 아침까지는 호흡기 달고 버티게 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던 내가... 아이 키우느라 감기약 처방조차 잊어버린 자신을 보며, 의사로 복귀하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외모도, 일도, 자존감도 잃어버린 채, 그저 집안일과 육아만 반복하는 내가 과연 ‘내과 전문의 김보민’이 맞는 걸까? 어느 순간, 내 정체성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결국 주변의 도움이었다.

내가 지쳐 나 자신조차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때,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다시 붙잡아 주어야 한다. 아이 엄마가 스스로 마음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네가 네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계의 회복은 단순히 남편·아이와의 관계를 넘어, 내 안의 나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회복되면,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조금 더 긍정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결국 정체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제 나는 안다.

몸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것만큼, 관계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관계의 회복 끝에는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찾는 길이 있다.


『“내 몸에 관심이 없었다라기 보단, 너무 지쳐서 외면하고 있었어요.”

“의사니까 잘 알겠지? 아니요. 사람이라서 더 모르고 살았어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미안했어요.”

“의사라서가 아니라, 엄마라서 무서웠던 순간들이었어요.”

“나는 점점 ‘누구 엄마’로만 불리며,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가고 있었죠.”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할 땐, 주위의 손길이 필요해요. 관계가 회복될 때, 정체성도 회복되니까요.”

“내 몸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것만큼, 관계와 나의 회복에도 귀 기울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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