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재원 생활 - 독일 주재원 준비하기 3
독일은 전 세계 적으로도 워라밸이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였던 것인가.. 우린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로 항공권을 예매했었고 갑작스러운 항공권 캔슬의 이유는 바로 루프트한자 파업이었다.
아니.. 아무리 파업이라도 그렇지 무슨 대학교 강의 하루 전날 교수님 개인 사정으로 내일 수업이 갑작스레 휴강되었다고 문자 날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미 지인들 및 가족들은 내일 잘 가라고 카톡이 남발하고 회사에서 부임일은 내일로 확정돼서 월급은 소급적용까지 되었고 뿐만 아니라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왓 타임 알유고잉투 어라이브 앳 마이 하우스를 지속 외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 여행사에 쉴 새 없이 연락을 취했으며 결국 그다음 날은 자리가 없어 이틀 뒤로 급하게 대체 항공편 예약을 마무리했다.
어차피 독일 가면 최소 4년은 있어야 하니 이렇게 된 거 이틀 정도 한국에 더 있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즐기자..라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말을 이내 받아들이며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위탁 수화물 6개 + 기내용 캐리어 4개 + 기내용 유모차 1개 + 짐인지 사람인지 모를 딸내미 1명
..... 뭐지......
나와 와이프, 세돌 지난 딸, 그리고 와이프의 죽는소리 및 반협박으로 인한 요청으로 우리와 처음 10일 정도 동행하기로 해주신 고마운 장모님.
이렇게 분명 우린 4명인데 저 11개의 짐은 어디서 나온 계산이었을까..
그냥 다 넣었다. 집에서 눈에 보이는 건 죄다 넣었고 마트 가서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사서 다 넣었던 것 같다. 이마트/롯데마트/코스트코를 다 돌면서 장만 몇 백만 어치를 봤으며 심지어 코스트코에서 계산해 주시던 분은 우리에게 "아니 평소에 이렇게 많이 사세요?" 하고 물으실 정도였다. 나는 가기 전부터 와이프에게 우리 어디 무인도 가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컨테이너가 도착하고 나서는 "자기야, 지금 한창 전쟁 중에 미안한 소리일 수 있지만 지금 혹시라도 전쟁 나면 우린 몇 년은 끄덕 없을 것 같아..."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종식되는 분위기가 되었으며 이에 한동안 침체기였던 해외 출입국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무후무하게 수화물이 오배송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뉴스나 기사에서 계속 보고가 되었다. 최종 독일 함부르크까지는 직항 서비스가 없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서 가야 하는데 이 위탁 수화물 6개가 잘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더더군다나 저 6개의 수화물 중 1개는 모두 김치로 채워져 있었다. 쿠팡에서 고가로 구매한 진공포장기를 가지고 엄마가 고향에서 보내준 묵은지를 한 포기 한 포기 한 땀 한 땀 개별 진공 포장하여 차곡차곡 쌓았더니.. 이민가방 1개에 들어가는 분량이 되었고 와이프에게 갖은 핍박과 잔소리를 듣고도 결국 승리하여 사수한 김치이다. 그렇다.. 나는 김치 없이 못 사는 남자였다.
공항에 비치된 그 큰 수화물 카트 두 개에 저 11개의 짐 및 짐인지 사람인지 모를 한 아이는 한 손에 앉은 채 겨우 인천공항에서 이동할 수 있었고 우리의 짐을 본 승무원의 동공이 흔들리는 눈빛 및 추가 요금 지불 등의 절차를 마주하며 무사히 탑승 수속을 마쳤다.
고된 13시간의 첫 비행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크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주어진 환승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가뜩이나 인천에서 또 한 시간가량 출발 딜레이가 된 바람에 환승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성인은 세 명인데 기내용 캐리어 4개에다가 애를 태운 유모차 1개까지 들고 환승을 해야 되기에 내리기 전부터 막막했지만 다행히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이 우리를 빠르게 인도해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미션 임파서블은 TV에서 탐 크루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난 이미 현실에서 탐 크루즈가 되어 한 요원을 따라 미션을 수행하듯, 온 짐을 끌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물론 고생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장모님은 벌써부터 발걸음을 후회하시는 듯한 모습이셨고 와이프는 이미 눈가에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우리 딸은 그저 달린다고 신이 나고 웃어댔다. 아비규환이었다.
마침내 함부르크까지 가는 비행기도 잘 타게 되었고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해서도 걱정과는 다르게 우리의 모든 짐이 무사히 도착했다. 겨우 승합차만 한 택시 2대를 나눠 타서 숙소에 도착하였고 정확히 한국 집에서 나온 지 24시간 만에 독일 숙소에 도착하였다. 힘든 몸을 이끌고 짐을 정리하던 중.."자기야 이게 무슨 냄새지..."
하....... 김치가 터졌다.
동시에 내 마음도 터져버렸다...... 독일...... 너 정말 나한테 이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