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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찬 Aug 19. 2023

Jam있는중국이야기

노총각

#Jam있는중국이야기-890 “ 노총각 구휼 제도중국,중국인


한국 농촌의 며느리들이

글로벌화 된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도 이제는 다정한

우리의 이윳들이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바람에

생긴 중국 농촌에서의

여자 부족현상을 북조선? 의

탈북녀들이 채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중국친구들애게

들었던 적이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노총각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을까?


중국의 고대는 1부 1처가 아니라서 고대 남성들은 처와 처를 끼고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첩까지 두는 사람은 드물었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없어서 한 평생 노총각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노총각이 많으면 사회의 문제가 생겨 강간이나 강제로 여성을 납치해 결혼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심지어 청나라 말기의 ‘염군봉기(捻军起义)’와 같은 노총각들의 분노가 쌓인 반란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대는 여러 가지 정책으로 노총각들의 아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첫째, 여성들에게 ‘싱글세’를 부과했습니다. 고대 중국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하도록 요구했고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아이를 낳는 걸 격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고조 유방은 여성들에게 ‘싱글세’도 받았는데요, 만 15세가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으면 매년 관청에 120전의 세를 내야 했습니다. 후에 이 세금은 600전까지 올랐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시집을 가야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무제 사마염은 심지어 만 17세가 되는 여성이 시집을 가지 않으면 가족에게 죄를 물어서 가장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딸을 빨리 시집보냈습니다.


둘째, 정부가 돈을 주어 결혼을 도왔습니다. 노총각이 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고 여겼기에 관청에서 돈을 지원하여 결혼을 도왔습니다.


또는 관청이 돈이 많은 부자들에게 돈을 내놓게 하여 가난한 노총각에게 지원해 줬습니다. 이런 현상은 민간이 부유했던 송나라 때 많았다고 하는데요, 돈을 내지 못하면 여성을 내놓게 했고, 전쟁에서 승리해서 돌아오면 여성 포로를 노총각에게 하사하여 결혼하게 했습니다.


셋째, 과부에게 재혼을 독려했습니다. 고대 여성들은 과부가 되면 영원히 딴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사상이 상상보다 훨씬 개방적이었습니다.


고대에는 과부가 재혼하는 걸 관청에서 독려를 했는데요, 예를 들어 당태종은 만 20세 이상의 남성, 또는 12세 이상의 여성은 배우자를 잃어 혼자 남게 되면 재혼을 하는 걸 고무 격려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관청에서도 과부들에게 선 자리를 주선했다고 하는데, 이를 피해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벌하기도 했답니다.


마지막으로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첩을 들이는 걸 제한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결혼도 못 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은 마음대로 첩을 들이면 사회적으로 불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나라의 한 학자는 ‘경대부는 1처 2첩, 사는 1처 1첩을 두고 상인은 첩을 두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일부 왕조는 세자, 군왕 등급은 여성을 4명까지 들일 수 있는데, 자식이 없어서 첩을 더 들일 수 있다고 제한을 했습니다.


비록 이러한 조치는 일부 노총각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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