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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나의 눈

by 트래거

안경을 벗는다. 안경을 쓴다. 안경을 낀다.

아니.

안경을 눈과 연결한다. 나의 시신경을 잡아다 끌어내서 연결한다.

뿌옇게 된 나의 세상이 다시 선명해진다.


깨끗한 세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빠른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켠다.

수증기가 잠식되어 다시 유리에 달라붙는다.

욕조에 물을 받는다. 흘러넘치도록 내 체온보다 높은 물을 받는다.

뿌옇게 흐려진 세상을 가지고 고개를 욕조에 넣는다.

아니.

머리부터 물속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듯, 미끄러지는 듯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나의 눈은 바닥과 맞닿아 더 흐릿해진다.


마음에 못을 박는다. 망치가 없어서 나의 손으로 박는다. 손에서 피가 흐르지만 보이지 않는다.

단지 뜨거움만 느낄 뿐. 따스해진 손으로 내 몸이 되어버린 안경을 뜯어낸다.


코가 안경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서 유리를 쳐다본다.

여기저기 흠집자국이 보인다. 나의 상처들이 모여서 만든 그 자국들을 보며 안심이 된다.

그 안심들이 모여 다시 불안(不安)으로 나아간다.


집에서 연결하는 나의 눈.


밖으로 나갈 때는 렌즈를 꺼내든다. 가면을 쓰며 문을 연다.


상처 난 나의 칠흑 같은 눈은 잠시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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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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