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나무

by 트래거

썩은 나무


나는 말했지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쉬다가 가라고


너는 말했지

내가 그늘이 되어 준다고

그 아래 앉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그 말에 나는

잠시 살아 있는 나무라 믿었다.

내 가지에 기대어 웃는 너를 보며

한 줄기 햇살 같은 위안을

내 안에서 길어 올렸다.


하지만 지금

너는 내 곁에 있으면 불행해지고

내 뿌리를 밟으면 불안해진다고 한다


나는 알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속은 텅 비어 있었고

겉껍질만 남아 서 있는

썩은 나무였음을


더는 새가 앉지 않고

꽃도 피어나지 않는 자리에

나는 여전히 너를 다르다 믿었다.

끝내,

다른 누구와는 달리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이제 그 믿음이 부끄럽다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싫다

허망한 기대를 지켜 세우느라

천천히 스스로를 갉아먹은 나


결국 남은 것은

차갑게 부서져 가는 줄기와

바람에 흩어지는 가루뿐...


나는 더 이상

누구의 그늘도 될 수 없는

조용히 무너지는

썩은 나무다

.

.

.
사라져 가는 자리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끝내 나를 속였던 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에게 보낸 문자에 적었다.

"나는 이제 썩은 나무야."

눈물에 번진 손가락이 남긴 오타, 섞은 나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끝내 너와도

나 자신과도 섞이지 못한 진짜 썩은 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