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by 트래거

결혼하던 날 따라 들어온 새하얀 너는

6년 동안 묵묵히 돌며

우리의 하루를 말려주었지.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 두 번, 세 번

쉼 없이 돌아가던 너를 보며

우스갯소리로 말했어.

우리 집에서 제일 불쌍한 건

건조기라고.


하지만 나는

너의 피로를 닦아주지 못했고

열교환기는 먼지 속에 방치된 채

네가 보낸 신호조차 외면했어.


결국, 네가 멈췄을 때

수리기사는 차갑게 말했지.

“이건 고치는 값이 더 듭니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린 조금 더 크고 새로운 기계를 골랐고

너는 말없이 수거되어 갔어.


너의 장례는 남의 손에 맡겨두고


새하얀 새 건조기 앞에서

좋다고 웃어 보이는 나의

마음 한구석은

계속 젖어가


뽀송한 옷보다 더 따뜻했던 건

언제나 너였음을


너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