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한 송이 씻어와라”
밥을 마치고 나면 늘 여름의 후식처럼
당신은 포도를 찾으셨지.
검은 듯, 보랏빛인 듯한
그 포도를
한 알 한 알 꼭꼭 씹으며 만족하던 당신의 모습
여름이 저물고,
포도나무 잎이 하나둘 빛을 잃기 시작할 때면
당신의 기침도 점점 길어졌지.
겨울이 오기 전,
마치 포도알이 떨어져 앙상히 뼈만 남은 듯
당신의 폐포도 힘을 잃어가고 있었던 걸...
아무도 몰랐다.
그 큰 포도송이 같던 당신의 폐는
이제는 투명한 유리관 너머,
인공호흡기의 숨결로만 이어져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서성인다.
손끝으로라도 닿고 싶은데,
닿을 수 없어,
눈물만 알알이 떨어진다.
당신의 숨소리마다
포도 알이 떨어지듯 내 마음이 부서진다.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하얀 눈 속에서 한 알씩 녹아 사라진다.
“포도 한 송이 씻어와라”
그 말이 다시 들리길,
내년에도 여름이 오면,
당신이 웃으며 그 말을 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