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보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난다.
차곡히 꽂힌 책들 사이로
사라진 사람들의 온기가
아직 식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듯하다.
읽히지 못한 문장들처럼
내 마음도 어딘가에 덧없이 끼어 있다.
문득 떠오른다.
당신의 책장엔
나의 이야기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얼마나 남았을까.
아마도 한 권으로도 벅찼을 텐데
그마저도 언젠가
당신 손끝에서 미끄러져
어두운 구석으로 밀려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당신 가슴 깊숙한 서가 한 칸에
나라는 제목의 얇은 책 한 권이
비록 구겨지고 낡아 있어도
버려지지 않길
.
.
.
그 희망 하나로 나는 오래도록 책장 앞에 서 있는다
류시화 님의 시처럼
살아 있는 감각으로 당신 곁에 남고 싶었지만
돌아서면 금세 흐려지는 희뿌연 구름처럼
당신의 하루에서 사라지고 말았고,
기욤 뮈소 님의 소설처럼
기이한 매력으로라도 기억되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당신이 마지막까지 읽지 못하고 덮어버린
미완성의 이야기였을 뿐이겠지.
그리고 오늘, 책장을 보다 문득 깨닫는다.
당신 마음속에서
나의 페이지는 이미 오래전에
조용히 찢겨 바람에 흩어졌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그 잔해를 찾으려
혼자 그 앞에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