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가 ABC 초콜릿을 먹었어요,ㅠㅠ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01
Q. 체중 5kg의 건강한 말티즈가 ABC 초콜릿 한 개를 30분 전에 먹었어요. 구토시켜야 할까요!?
강아지나 고양이가 먹어선 안 되는 것을 먹고 오면 저희는 '이물 섭취'라고 해요. 이물질을 먹었다, 뭐 이런 의미죠. 이러한 '이물 섭취'는 대개 어린아이, 혹은 상습범(?)에게서 자주 발생해요. 그동안 한 번도 이물 섭취를 한 적이 없는 나이가 지긋이 든 노령견은 이런 일이 좀 드문 편이죠.(고양이는 나이가 들어도 '실' 비슷한 것들을 먹고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구토를 해서 오는 경우 어린 나이이거나 최근 쓰레기통을 뒤졌거나 혹은 뭔가를 입에 물고 장난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이물 섭취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요. 물론 나이가 많아도 구토 횟수나 내용물, 토사물의 양에 따라 이물 섭취를 의심하게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의학이란 건 결국 예상되는 질병에서 가능성이 높은 것 순으로 검사를 진행하다 보니 그 질병에 대한 발생 가능성이 꽤 중요하답니다.
10년 정도 동물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참 다양한 이물질들을 만났어요. 자두씨, 일회용 마스크, 운동화 끈, 자갈, 500원짜리 동전, 칫솔 손잡이, 낚시 바늘, 재봉 바늘, 게임기 조이스틱 등등. 뿐만 아니라 보호자 분의 피임약이나 콘돔을 먹고 온 아이도 있었어요.(좀 특이한 경우지만 저희 병원엔 양말이나 버선, 스타킹만 집요하게 노리는 '연쇄 양말 섭취범'이 있어요. 그 아인 지금까지 구토 처치 5번에 개복 수술 2번, 그리고 내시경도 한 번 했어요.)
그런데 이런 소화가 안 되는 이물들도 많지만 이보다 '누구나 아는, 강아지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들을 먹고 오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세 가지예요.
초콜릿, 포도, 파 마늘.
이 흔한 독성 삼대장 중에서도 월등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초콜릿이죠. 그런데 대개의 보호자분들이 아주 소량의 초콜릿을 먹어도 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죠. 우선 초콜릿을 먹었을 때 보호자분께서 생각해주셔야 할 것이 있어요.
1. 언제 먹었나?
2. 얼마나 먹었나?
3. 무슨 종류인가? 화이트? 밀크? 다크?
아이가 초콜릿을 먹은 게 의심된다면 무조건 위 세 가지를 파악하셔야 해요.
우선 '언제 먹었나'. 수의사들이 구토 처치로 빼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위'안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위를 지나 소장으로 넘어간 이물은 구토로 빼낼 수가 없어요. 그럼 언제 소장으로 넘어가느냐. 1-2시간. 즉, 무언가를 먹고 1-2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구토로 빼낼 수가 없어요. (단 과식을 했거나 다른 이상으로 위장관계의 운동 속도가 떨어져 있다면 3-4시간이 지나도 위에 남아있을 수 있어요.)
다음은 '얼마나 먹었나'.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초콜릿 속의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라는 성분 때문이에요. 이 테오브로민은 우리가 흔히 즐겨 먹는 커피 속의 '카페인'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먹은 아이들이 마치 커피를 마신 것처럼 변해요. 속이 쓰리거나 과하게 흥분하거나 심장이 빨리 뛰죠. 더 심해지면 발작, 혼수상태 간혹 사망하기도 해요. 그런데 개미 눈곱만큼 먹은 아이랑, 코끼리 똥만큼 먹은 아이는 당연히 차이를 보이겠죠. 그래서 되도록이면 얼마나 먹었는지 수치적으로 알면 좋아요. 몇 개 혹은 몇 g을 먹었는지.
마지막으로 '무슨 종류의 초콜릿인가'. 간단히 말해 색이 진할수록 위험해요. '테오브로민'은 색이 진할수록 고농도로 들어있기에 사실상 화이트 초콜릿은 먹어도 그로 인한 큰 문제가 발생되진 않아요. 당연히 다크 초콜릿이 가장 위험해요.
자 그럼 이제 위의 문제를 풀어봅시다.
우선 먹은 지 30분밖에 되지 않았으니 구토 처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ABC 초콜릿 1 개면 양은 매우 작네요. 몇 그램이나 될까요? 3g? 그리고 ABC 초콜릿은 쓰지 않고 초코색을 띠죠. 그럼 밀크 초콜릿. 밀크 초콜릿 3g이 위 안에 있다. 그럼 구토를 시켜야 할까요?
정답은,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해 주세요.................. 하지만 저라면 그냥 지켜볼 거 같습니다. 만약 다크 초콜릿 손바닥만한 걸 다 먹었다면? 물어보고 말고 할 것 없이 바로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뛰세요.
(초콜릿에 들어 있는 부재료 및 이물 섭취 환자의 기저 질환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단순히 "무슨 초콜릿은 얼마큼 먹으면 안 돼요!"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반대로 해석해서 "그 이하는 괜찮아요!"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을까 봐요. 혹시 그런 답을 원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수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 초콜릿을 한 번 맛본 아이들은 더욱 조심해 주세요. 단 맛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더욱 주의가 필요한 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