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Oct 02. 2021

스테로이드는 쓰지 말아 주세요. 간 망가지면 어떡해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26

스테로이드


(여러분들이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이 단어가 주는 인상이 어떤가요? 물론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병원에서 진료하며 스테로이드를 쓰겠다고 말씀드리면 대개 반응이 부정적이세요.


그거 꼭 써야 돼요?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일부 보호자분들(주로 젊은 남성분들)은 이렇게 물어보세요.


어? 그럼 얘 근육질 되는 거예요?




사실 스테로이드는 여러 물질들을 총칭하는 용어예요. 그래서 치료 목적으로 쓰이는 합성 스테로이드 물질 이외에도 다양한 성 호르몬과 몸을 울끈 불끈 근육질로 만들어 주는 핑 약물, 스트레스받을 때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호르몬도 모두 스테로이드에 속해요.


스포츠 경기에서 도핑 약물이 검출되어 자격 정지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으시죠? 뿐만 아니라 헬스 좀 하시는 분들은 스테로이드 주사로 근육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얘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는 병원에서 흔히 약물로 쓰는 스테로이드와는 반대되는 역할을 해 근육을 키우고 신체에 털을 많이 나게 해요. 약물로 흔히 쓰이는 스테로이드 오히려 근육을 줄이고 인대를 약화시키고 탈모를 유발하거든요. 도핑용 스테로이드는 테스토스테론이라 불리는 남성 호르몬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효과도 비슷한 편이에요. 수의학에서는 사실 거의 쓸 일이 없어요. 사람에서야 남성 호르몬이 중요하죠. 하지만 수컷 털북숭이들은 중성화 수술할 때 고환 자체를 제거해 버려요. 그래서 더 이상 남성 호르몬이 나오지 않게 되죠. 있는 것도 없애는 마당에 인위적으로 넣어줄 일이 잘 없어요.


인체나 견체, 묘체엔 여러 가지 성 호르몬이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테스스테론을 포함하여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티솔까지 매우 다양한 호르몬들이 몸에서 생성돼요. 각기 다른 역할을 하지만 모두 스테로이드에 속해요.


중요한 건 바로 약물로서 쓰이는 스테로이드죠. 우리가 병원에서 흔히 쓰는 스테로이드 약물은 사실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호르몬을 따라 만든 거예요. 일종의 합성 호르몬이죠. 그런데 몸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호르몬이 생체의 거의 모든 세포에 작용하는 아주 중요한 호르몬이다 보니, 이 아이를 따라 만든 약물 스테로이드도 털북숭이들의 모든 세포에 영향을 끼쳐요. 그래서 약물을 고농도로 오래 쓸 경우 온갖 종류의 부작용들이 생기게 되죠.


부작용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요. 흔히 알고 있는 간이 망가지는 것부터 시작하여 털이 뻣뻣해지고 탈모가 생기고 근육은 빠지지만 지방은 늘어요. 호흡근도 약해지고 내장 지방이 늘어나서 호흡도 힘들어지고 구토와 설사 같은 소화기 증상도 나타나요. 혈전증과 고지혈증, 당뇨도 유발하고 우울하고 기력마저 떨어지는 행동 변화까지 유발해요.(혈전증 ; 혈관 내에서 혈액이 응고되어 혈관을 막아 문제를 일으킴) 하지만 다행인 건 약을 끊으면 대개 이러한 부작용들이 개선돼요.


그렇다면 병원에선 이렇게 무섭고 위험한 약물을 도대체 왜 쓰는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스테로이드만큼 효과가 확실하고 빠른 약물이 없기 때문이에요.

스테로이드 약물을 쓰는 상황은 대략 4가지 정도가 있어요. 염증이 심할 때, 환자 몸에서 면역 반응이 너무 활발하여 조금 진정시켜야 할 때, 종양이 생겼을 때 그리고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어떠한 이유로 부족할 때예요.


염증이 심할 때 다른 소염제들도 다양하지만 스테로이드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염증을 잡아주는 약물은 현재까지 없어요. 그래서 염증으로 힘들어하는 털북숭이에겐 짧은 기간 동안의 스테로이드 약물 사용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죠. 예를 들어 심각한 귓병으로 귓구멍이 퉁퉁 붓고 빨갛게 달아올라 가려움과 통증에 고통받고 있을 때! 스테로이드 처치 없이는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고통받는 기간도 길어지게 돼요.

 

면역 반응이 너무 활발할 땐 면역 억제제가 필요해요. 평소 내 몸을 나쁜 것들로부터 지켜주는 면역 반응이 너무 과하게 행동하여 정상적인 본인의 장기를 손상시키거나 투머치 염증 반응으로 오히려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어요. 이럴 때 면역 능력을 일부 억제시켜야 하는 데, 대부분의 면역 억제 약물은 작용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일부 약물은 한 달 이상 써야지만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 우선 스테로이드로 급하게 면역을 억제시켜 놓은 뒤 다른 면역 억제제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어요.


이 외에 종양이 있을 때도,  내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부족할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약물이에요.


두 번째는 위에서 말씀드린 부작용들은 대개 고농도로 오랜 기간 써야 겨요. 짧은 기간 사용 시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많이 보는, 그리고 식욕이 늘어나는 수준의 부작용 밖에 없요. 물론 아이들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엔 그리 높지 않은 용량으로 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힘 없이 축 처지고 잠만 자는 경우가 있어요. 호흡을 너무 가쁘게 헉헉 거리거나 소변 양이 너무 늘어나 평소 안 하던 소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상황에 치료 효과가 워낙 좋다 보니 이 정도의 부작용은 감안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의사나 수의사나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약을 쓸 때 부작용을 항상 고려하며 써요. 여러 약을 쓸 경우 상호 간에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지도 신경 써가며 처방을 내리죠.

모든 약이 마찬가지겠지만 스테로이드 역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써야 돼요. 여러분들의 주치의 선생님 또한 그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하실 거예요. 그러니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안 돼요. 필요하다면 꼭 써야 하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약이 바로 스테로이드예요.




털북숭이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건 막연한 두려움과 의심이 아니에요. 주어진 처방을 빠짐없이 따르고 아이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며 치료받는 아이를 격려하며 응원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께서 해주실 일이에요. 그런 당신을 우리 수의사들이 응원하고 도울 테니, 소중한 털북숭이 가족을 위해 다 같이 힘내 보아요!







작가의 이전글 매일 개껌 주는데,,, 그래도 양치질해줘야 돼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