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사계절과 삶:
극한이 빚어낸 지혜

by 이헌철
image.png 오이먀콘의 겨울풍경 ⒸWilk Vatroslawski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무르만스크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겨울, 무려 40일 넘게 해가 뜨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산다. 아침도, 낮도 없다. 그저 계속되는 밤뿐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궁금했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시간 감각이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한 여행자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시계를 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image.png 무르만스크의 겨울, 오로라.

생각해보면 우리는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구분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무르만스크 사람들은 새로운 기준을 찾았다. 바로 자기 몸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누군가 보고 싶으면 찾아갔다. 시계가 아니라 몸의 리듬에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고, 9시까지 출근해야 하고, 점심은 12시에 먹어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 최북단의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묻는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어쩌면 현대인이 겪는 많은 스트레스는, 우리가 너무 시계에만 맞춰 살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여름이 오면, 이곳은 해가 지지 않는다. 밤 11시에도 대낮처럼 밝다. 이때 러시아인들은 아예 잠을 포기한다.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밤새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1년 중 대부분을 어둠 속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이 밝은 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따뜻함

시베리아의 겨울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하 40도는 기본이고, 어떤 지역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간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야쿠티아 지역의 옛 사람들은 ‘발라간’이라는 독특한 집을 지었다. 여러 가족의 움막을 하나로 연결해서, 마치 거대한 미로 같은 집을 만드는 것이다. 각 가족이 난로를 피우면, 그 따뜻한 공기가 복잡한 통로를 타고 전체 집안을 데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규칙이다. 누군가의 난로 열기 덕분에 따뜻하게 지낸 가족은, 봄이 오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아야 했다. 나무를 구해주거나, 사냥을 도와주거나, 아이를 돌봐주는 방식으로 갚아야 했다. 이것을 그들은 '열 빚'이라고 불렀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개념이다. 우리는 추위를 혼자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나눠 가지며 견딘다. 내가 따뜻한 것은 누군가의 덕분이고, 누군가가 따뜻한 것은 내 덕분이다.

image.png 오이먀콘의 겨울풍경 ⒸWilk Vatroslawski


요즘 한국에서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쩌면 우리가 '추위'를 너무 쉽게 정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개별난방이 있고, 온수가 나오고, 집 집마다 보일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게 된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발라간이 보여주는 진실은 다르다. 진짜 따뜻함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사람은 사람 곁에 있을 때 비로소 따뜻하다.

태워버리는 여름, 쌓아두지 않는 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6월은 마법 같다. 밤 11시인데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새벽 3시면 이미 해가 떠 있다. 이 백야의 계절, 러시아인들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논다. ‘백야 축제’라는 게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음악과 무용 공연이지만 실제로는 도시 전체가 잠들지 않는 거대한 파티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고, 술을 마신다. 다음 날 일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논다.

러시아 문화를 연구한 역사학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기쁨을 아껴 쓰지 않고 폭발시킨다.”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는 보통 휴가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율적으로,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의 여름은 다르다. 그들은 여름을 쓰는 게 아니라 태워버린다.

왜 그럴까? 1년 중 대부분을 춥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 짧은 여름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몸으로 부딪힌다. 요즘 우리는 모든 행위를 ‘자기 계발’로 만든다. 휴가도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러시아의 여름이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어떤 순간은 쌓아두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효율이 아니라 강렬함이다.

여름날에 뜨거운 차를 마시는 이유

러시아를 처음 여행한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한여름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러시아인들은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상해 보인다. 더운데 왜 뜨거운 걸 마실까? 이것을 러시아어로 ‘뽀그리브’라고 한다. ‘안에서부터 데우기’라는 뜻이다. 외부의 더위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몸 안의 온도를 높여서 땀을 흘리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를 보면, 더울 때 뜨거운 차를 마시면 체온이 더 효과적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하지만 뽀그리브의 진짜 의미는 과학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옷을 벗는 것은 ‘적응’이다. 환경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뽀그리브는 다르다. 환경이 어떻든, 나는 내 안의 열을 지킨다. 외부가 나를 규정하게 두지 않는다는 자세다.

요즘 사람들이 번 아웃을 많이 겪는다. 회사가 요구하고, 상사가 압박하고, 세상이 변화를 강요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적응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쳐버린다. 러시아의 뽀그리브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 안을 지키고 있는 따뜻함은 무엇인가? 세상이 아무리 차갑게 몰아쳐도, 당신이 포기하지 않을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도 용기다

러시아 문학을 읽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주인공들이 계속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체홉의 『세 자매』에서 주인공들은 “모스크바로 가자”고 계속 말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도,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신 고민하고, 갈등하고, 기다린다. 왜 그럴까? 게으르거나 우유부단(優柔不斷)해서가 아니다. 러시아인들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봄은 인간의 의지로 앞당길 수 없다. 씨앗이 땅속에서 조용히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7개월을 눈 속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조급함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오히려 조급함은 일을 망친다. 땅이 얼어 있을 때 씨를 뿌리면 다 죽는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로 유명하다. 빠른 건 좋다. 우리는 그 속도로 많은 것을 이뤘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빠르다. 모든 것에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공부하면 당장 성적이 올라야 하고, 운동하면 다음 주에 살이 빠져야 하고, 사랑하면 바로 답을 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겨울이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다.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모든 것을 당장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때가 올 때까지 견디는 것, 그것이 진짜 인내다.


결국 남는 것

러시아의 사계절은 극단적이다. 40일간의 어둠, 영하 50도의 추위, 해가 지지 않는 여름. 이런 환경에서 산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극한의 환경이 러시아인들에게서 인간성을 빼앗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깊은 지혜를 만들어냈다.

극야 속에서도 음악을 연주하고, 영하 40도에서도 시를 쓰고, 짧은 여름을 온몸으로 축제하고, 긴 겨울을 위해 정성스럽게 피클을 담그는 사람들이 러시인들이다. 그들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다. 환경이 우리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10년을 보냈다. 그곳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곳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추위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추위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당신은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러시아의 대답은 명확했다. 함께 모여 뜨거운 차를 나누고, 발라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공유하고, 백야를 온몸으로 축제하고, 할머니의 피클을 맛보며, 봄을 기다리는 모든 행위 속에서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러시아의 사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이다.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안의 따뜻함을 지킬 수 있고, 그 따뜻함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 수밖에 없고, 서둘러서도 얻을 수 없고, 시간을 들여야 하고, 때로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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