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문학의 나라, 러시아
1930년 4월 14일 아침, 모스크바에서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가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겨눴다. “사랑의 배가 일상이라는 암초에 부딪쳐 부서졌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어간 것이다. 그는 혁명을 노래했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혁명은 오지 않았다. 그가 맞이한 것은 검열과 억압, 그리고 예술의 죽음이었다. 마야콥스키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 러시아 ‘은세기’,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폭발적으로 꽃피웠던 문화의 시대가 스탈린의 철권 아래 완전히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왜 '은'세기인가
19세기는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였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인들의 시대였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금을 추구하지 않았다. 은을 택했다. 더 차갑고, 더 날카롭고, 더 실험적인 빛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시대적 배경이었다. 러시아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1905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의 팽창, 그리고 다가오는 1차 대전과 1917년 혁명,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이 불안을 온몸으로 느꼈고, 그 긴장감이 창작의 폭발로 이어졌다.
안나 아흐마토바, 침묵 속의 목소리
1910년대 샹트페테르부르크의 문학 카페 <떠돌이 개>에 젊은 여성 한 명이 앉아 있다. 안나 아흐마토바이다. 스물한 살의 그녀가 시를 낭송하기 시작하면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아흐마토바의 시는 짧고 단순했다. 긴 설명도, 거창한 철학도 없었다. 그저 장갑을 끼는 손, 문 앞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 창문 너머 보이는 나무 한 그루, 하지만 그 일상의 디테일 속에 이별의 아픔, 사랑의 절망, 여성의 고독이 숨어 있었다.
당시 러시아 문학은 남성들의 세계였다. 여성의 감정, 특히 사랑과 이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경박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아흐마토바는 달랐다. 그녀는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했다. 그리고 독자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혁명 이후에 찾아왔다. 1920년대부터 그녀의 시는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출판 금지됐다. 1930년대에는 남편이 총살당하고, 아들이 수용소에 갇혔다. 아흐마토바는 17년 동안 매달 감옥 앞에 서서 아들에게 감옥에서의 필요를 전달했다. 그 고통 속에서 그녀는 『레퀴엠』을 썼다. 종이에 쓸 수 없었다. 발각되면 죽음이었다. 그래서 시를 암송으로만 전했고, 친구들이 그것을 외웠다. 한 여성의 고통이 수백만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된 순간이었다.
마야콥스키와 아방가르드의 꿈
“과거의 배에서 푸시킨을 던져버려라!” 1912년, 마야콥스키와 미래주의자들이 선언한 말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아방가르드라 불렀다.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로 '선봉대'라는 뜻이다. 군대의 맨 앞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처럼, 그들은 예술의 최전선에서 모든 전통을 파괴하려 했다. 마야콥스키는 2미터 가까운 거구에 천둥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그의 시는 속삭임이 아니라 외침이었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광장에서 낭송되는 선동의 언어였다.
1915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더 극단으로 갔다. 그는 흰 캔버스 위에 검은 사각형 하나만 그렸다. 사람도, 풍경도, 이야기도 없었다. 순수한 형태만 남았다. 관객들은 경악했다. “이게 그림이냐?”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아방가르드의 본질이었다. 모든 것을 제로로 되돌리는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의 혁명을 꿈꿨다. 그런데 1917년, 혁명이 정말로 왔다.
처음엔 환희였다. 마야콥스키는 거리에서 혁명을 노래했다. 말레비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은 포스터를 그리고, 연극을 만들고, 건축을 설계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920년대 말,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됐다. 예술은 노동자와 농민을 찬양해야 했다. 추상은 금지됐다. 예술의 실험은 '인민의 적'이 됐다. 마야콥스키는 절망했다. 그가 꿈꿨던 자유로운 예술의 혁명이 아니라, 예술을 억압하는 정치의 혁명이었다. 1930년 4월, 그는 자살했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은세기가 남긴 것
은세기는 짧았다. 30년이었다. 한 세대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러시아는 세계 문화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아흐마토바의 문학은 1966년까지 살아남았다. 스탈린이 죽고, 해빙기가 오고, 다시 그녀의 시가 출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잃은 것들—남편, 친구들, 침묵당한 17년의 세월—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레비치는 말년에 다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사각형은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마야콥스키의 시는 한동안 금기였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이 “소비에트 시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선언하면서 다시 빛을 봤다. 하지만 그때 그의 급진적인 실험 정신은 이미 거세된 뒤였다. 은세기 예술가들은 파국 앞에서 노래했다. 그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검열 속에서도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모든 억압을 뚫고 살아남았다.
한국에도 비슷한 시대가 있었다.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의 문학이다. 김소월, 한용운, 이상, 그들 역시 암흑의 시대에 시를 썼고, 절망 속에서 언어를 갈고 갈았다. 은세기와 그 시대가 닮은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마야콥스키가 죽기 전 남긴 말이 있다.
"사랑의 배가 일상이라는 암초에 부딪쳐 부서졌다. 나와 인생은 무승부다."
은세기 예술가들의 삶도 그랬다. 그들은 싸웠고, 졌고, 하지만 완전히 지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