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 안에 살아 숨 쉬는
이교 전통

러시아 정교회 문화: 신앙이 예술이 되다

by 이헌철
image.png 미슬레니차 축제 @holiday.by/blog/37353

한여름 밤, 시베리아의 작은 마을. 젊은이들이 손을 잡고 모닥불을 뛰어넘고, 할머니들은 화환을 강물에 띄운다. 이들은 이교도일까? 아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같은 사람들이 정교회에서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기념할 것이다. 이것은 비밀스러운 이교 의식이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축제다. 천 년 전 기독교가 러시아 땅에 들어왔을 때, 이교 신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새로운 옷을 입고 다른 이름을 얻었을 뿐이다.


천둥의 신이 선지자가 되던 날

988년, 키예프 루시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천둥의 신 페룬의 목상은 강물에 던져졌다. 사람들은 막대기로 그것을 때리며 모욕했다. 공식적으로 신은 죽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집 벽난로 옆에는 여전히 도모보이(Domovoi)라는 집안 수호령을 위한 우유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정교회의 이교 신을 향한 천 년 박멸 시도도, 소비에트의 무신론 선전도 그를 몰아내지 못했다.

더 놀라운 것은 러시아 정교회 자체가 이교와 타협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페룬을 박멸하는 대신 그와 비슷한 성인을 찾았다. 예언자 엘리야였다. 불 전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적들을 물리친 구약의 인물이다. 게다가 엘리야의 축일은 율리우스력 7월 20일로, 이는 고대 슬라브인들이 페룬을 기리던 시기와 절묘하게 일치했다. 완벽한 대체물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엘리야를 ‘천둥자(The Thunderer)’라고 불렀다. 폭풍이 몰아치면 “엘리야가 마차를 몰고 있구나”라고 했다. 이름과 종교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이 믿는 신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가축의 신 벨레스는 성 블라시우스가 되었고, 여신 모코쉬는 물레와 곡식을 든 성 파라스케바가 되었다. 러시아 농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리가 아니라 실용성이었다. 천둥이 칠 때는 엘리야에게, 가축이 아플 때는 성 블라시우스에게, 집안에 불운이 닥치면 도모보이를 달랬다. 각자의 영역이 있었고, 모두가 필요했다.

image.png 러시아 블리니 @holiday.by/blog/37353


태양을 먹는 정교회 축제

러시아 정교회 달력에는 마슬레니차라는 독특한 축제가 있다. 정교회가 공식 인정한 유일한 이교 축제다. 원래 춘분을 맞아 겨울을 보내던 이교 축제는 사순절 직전 ‘치즈 주간’이 되었다.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둥글고 노란 블리니(러시아식 팬케이크)를 먹는다. 태양을 상징하는 팬케이크다. 일주일 내내 썰매를 타고, 주먹 싸움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짚으로 만든 거대한 허수아비를 태운다. 현대 러시아에서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부터 시베리아 마을까지, 전국 어디서나 허수아비가 불타오르고 사람들은 블리니를 먹으며 봄을 맞이한다. 정교회 신자들이 이교 의식을 행하는 걸까? 아니다. 그들은 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image.png 마슬레니차 축제 @holiday.by/blog/37353

시베리아에서 사제가 샤먼이 될 때

시베리아에서는 정교회 사제들이 샤머니즘 의식을 행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과거 일부 기록에 따르면, 타이가 깊숙한 곳의 사제들은 샤먼과 묵시적인 협정을 맺어 민속 의식을 묵인하거나 공동체 의례를 조율하기도 했다. 이는 일부 지역의 독특한 민속적 관습이다. 시베리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밤, 끝없는 타이가 숲에서 길을 잃으면, 원하지 않아도 이교도가 된다. 생사가 걸린 문제 앞에서 원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러시아 정교회와 슬라브 이교의 융합은 종교사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종교는 기존 신앙을 철저히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러시아 민중은 조상의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페룬은 엘리야가 되었고, 봄맞이 허수아비 태우기는 사순절 축제가 되었다. 비잔틴의 엄숙한 예배와 슬라브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 숭배가 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영성을 만들어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한국의 절에는 산신각(산을 지키는 산신을 모시는 작은 전각)이 있고, 설날에 차례를 지내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도 장식한다. 이것을 혼란이라고 여길까, 풍요로움이라고 여길까?

러시아의 이중신앙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가 단일한 순수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섞이고 변형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순수한’ 전통이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어떻게 의미를 찾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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