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러시아 정교회
17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발라암 수도원에서 열 명의 수도사가 거친 북극해를 향해 긴 여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지구 반대편 알래스카의 코디악 섬이었다. 거리는 11,000 Km가 넘었고, 여정은 거의 300일이 걸렸다. 배를 타고, 걸어서, 때로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그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아갔다.
그 중 한 명이 헤르만 수도사였다. 그는 유창한 설교가로서의 언어보다 삶의 언어를 택했다. 하지만 그가 구사한 ‘언어’는 달랐다. 고아들을 돌보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며, 러시아와 미국 회사의 착취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그것이 그의 언어였다. 1837년 그가 스프루스 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알류트족은 그를 친할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아파(Apa)’라고 불렀다. 이것이 러시아 정교회 선교의 시작은 아니지만 이것이 러시아 정교회 선교의 정신이다.
숲 속으로 들어간 수도사들
988년, 러시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그 해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는 다른 교회들과 달랐다. 중앙 조직도 없었고, 국가의 재정 지원도 거의 없었으며, 전문 선교단체도 없었다. 대신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우랄산맥, 알타이 산맥, 시베리아의 끝없는 설원. 그곳에서 그들은 나무를 베고, 땅을 갈고, 기도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숲 속의 부족들이 이 수도사들을 찾아왔다. 말없이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 나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손길, 기도할 때의 평화로운 얼굴, 이 모든 것이 그 어떤 설교보다 강력했다. 수도원 주변에 마을이 생겨났고, 천 년에 걸쳐 시베리아 전역으로 복음이 퍼져나갔다.
마카리우스(Makarii Glukharev)가 알타이 선교단을 이끌고 현지에 도착한 정식 연도는 1830년이다. 이곳 유목민들은 전사였다. 거칠고 강했다. 마카리우스는14년간 그들과 함께 살았다. 처음에는 소수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세기 말, 40,000명의 유목민 중 25,000명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들은 강제로 개종당한 것이 아니다. 마카리우스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라난 것이다.
일본 땅에서 50년을 보낸 니콜라이
1861년, 25세의 청년 니콜라이 카사트킨이 일본에 도착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외국인을 배척하는 나라였다. 그는 먼저 6년간 일본어를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배웠다. 그리고 그는 50년을 일본에서 보냈다. 성경과 예배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신학교를 세우고, 일본인 사제를 양성했다. 1912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일본 정교회는 33,000명의 신자와 266개의 공동체, 43명의 성직자를 가진 자립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쿄에 그가 세운 니콜라이 성당은 오늘날까지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를 기억한다. 일본인들은 그 성당을 애정을 담아 ‘니콜라이-도(니콜라이의 집)'라고 부른다.
어둠의 70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정교회에 어둠이 찾아왔다. 70년 이상 예배는 금지되었고, 설교는 불법이었으며, 성경을 소지하는 것조차 범죄였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수많은 수도사, 사제, 신자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되었다. 교회들은 폐쇄되거나 파괴되었다. 천 년간 이어진 선교의 불꽃이 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지하에서, 숨죽인 기도로,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신앙은 지켜졌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해체되면서 러시아정교회는 다시 태어났다. 1995년 선교부를 설립했다. 천 년 전 수도사들의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선교는 이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선교와 만났다. 오늘날 러시아 정교회는 3,500개가 넘는 사회봉사 기관을 운영한다. 70개의 재활센터, 29개의 임산부 쉼터, 40개의 노인 요양원, 70개의 노숙자 보호소. 300개가 넘는 자비의 수녀회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에 정교회 공동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지인 성직자들이 배출되고, 현지 언어로 예배가 드려지며, 진정한 아프리카 정교회가 형성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 선교의 비밀: 케노시스와 성육신
러시아 정교회 선교의 비밀을 이해하려면, 한 단어를 알아야 한다. ‘케노시스(Kenosis)’이다. 그리스어로 ‘비움’을 뜻하는 이 말은, 빌립보서 2장7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비울 때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 주신다는 이 신학이 러시아정교회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케노시스는 겸손, 자기비하, 자발적 가난, 순종, 무저항, 고난과 죽음의 수용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첫 번째 비밀 : 자신을 비우는 겸손
러시아 수도사들이 깊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선교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서였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도, 안락함도, 심지어 선교의 ‘성공’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웠다. 정교회 신학에서 케노시스는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하나님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베리아 수도사들은 이 케노시스를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의 겸손한 노동, 나눔을 마다하지 않는 손길, 기도할 때의 평화가 어떤 웅변보다 강력한 설교가 되었다.
두 번째 비밀 : 언어와 문화의 성육신
1823년 알래스카에 도착한 이노센트(요한 베니아미노프) 신부는 놀라운 일을 했다. 그는 알류트족의 언어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언어를 위한 문자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그는 성경과 예배서를 알류트어로 번역했다.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은 전도, 교육, 예배에서 가능한 한 현지 언어를 사용했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과 정교회의 모든 교리적 유산을 전달했다. 1834년부터는 틀링깃족을 위해 또 다른 문자 체계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했다.
니콜라이 카사트킨은 일본에 도착한 후 무려 6-7년간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데만 집중했다. 서둘러 개종자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본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1861년 도착해서 1868년에야 첫 세 명의 개종자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평생 매일 저녁6시부터 10시까지 30년간 번역 작업을 계속하여, 수천 명의 일본인을 정교회로 개종시켰다.
가장 성공적인 선교사들은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했고, 성경, 예배서, 교리문답서를 현지 언어로 번역했다. 카잔 지역에서만 1903년에 22개 언어와 방언으로 예배가 드려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말씀이 각 민족의 언어로,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리듬으로 살아 숨쉬게 한 것이다.
세 번째 비밀 : 토착 교회의 꿈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은 신앙을 토착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가능한 한 빨리 현지 성직자를 서품하려고 했다. 야곱 네츠베토프 신부가 대표적이다. 그는 러시아인 아버지와 알류트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고향 알래스카로 돌아와 자기 민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러시아 수도사와 선교사들은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앙을 전달했다. 그 결과 정교회는 알래스카 원주민 문화에 성육신 했고, 토착민들이 자신의 것으로 부를 수 있는 진정한 다문화 신앙으로 변모했다.
1867년 알래스카가 미국에 팔린 후에도 정교회는 살아남았다. 왜일까? 러시아에서 온 선교사들이 떠난 후에도 토착 교회가 이미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1867년까지 알래스카 선교단은 9개 정교회 교구에 12,000명의 토착 기독교인을 가졌고, 35개의 예배당과 17개의 학교를 운영했다.
네 번째 비밀 : 문화의 폐지가 아닌 완성
정교회는 알류트족의 기독교 이전 영성에 대해 비교적 민감한 접근을 취했으며, 정교회를 알류트족의 고대 종교 유산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은 원주민의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시켰다.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은 토착 신앙을 활용하고 기독교 용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틀링깃족에게 정교회의 죽은 자를 애도하고 기념하는 전통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는 조상 숭배를 강조하는 그들의 전통과 맞닿아 있었다.
다섯 번째 비밀: 강요하지 않는 사랑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도, 모든 것을 지배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확산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 목적은 조직된 교회의 권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으로 세상을 섬기고 구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헤르만 수도사는 알류트어를 유창하게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과 존중, 친절한 돌봄의 언어가 알류트족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며, 러시아와미국 회사의 가혹한 정책으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했다.
알래스카 선교 규칙에는 명확하게 적혀 있다. “원주민 개종에 강제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자발적 수용과 교회 생활 참여를 강조했다.
천년의 울림
러시아 정교회의 천년 선교 역사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선교를 떠나는 선교사들의 배낭은 가벼웠고, 전략도, 목표도, 성공 지표도 없었다. 오직 비우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겠다는 소망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현지 언어를 배우는데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성경과 신앙서적을 번역하며 선교를 했다. 때로 문자를 만들어 언어 체계를 세우고 가르치며 선교했다. 말을 배우는데 어려움을 느낀 선교사는 고아를 돌보고, 병든 이를 치료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호하는 일로 선교했다. 그저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함으로 선교했다. 이로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 사랑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알래스카의 얼음 바다에서, 일본의 니콜라이 성당에서, 아프리카의 붉은 대지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교는 11,000 Km의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50년의 인내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목숨도 내어 놓는 것이 선교사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