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드는 오후, 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아이는 익숙한 듯 폴라포를 골라 들고는 작은 발걸음으로 놀이터를 향해 걸었다. 분홍빛 설렘이 묻어난 그 걸음이 참
예뻤다. 어린이집 시절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아이는 그 사이에서 금세 웃음꽃을 피웠다.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뛰고 부르짖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아이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얼굴에 낯선 구름이 끼더니 내게 화살 같은 말이 날아왔다. “아빠, 저리 가!”
친구들 엄마들이 둘러앉아 있는 공간, 아이의
목소리는 바람을 가르듯 선명했고, 그 말은 꽤나
오래 이어졌다. 3분쯤 되었을까. 나는 당황했고,
민망했고, 어쩐지 서운했다. 감정을 누르며 아이를 다독이다 이내 포기하고, 가방을 들고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아이는 그렇게 홀로 남겨졌고, 나는
그 작은 등을 뒤로한 채 집을 향해 걸었다.
잠시 후, 아이는 나를 따라왔다. 내 그림자를 밟으며 말없이 걸었다. 그 걸음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뒤, 곧 출근할 아내를 깨울까 염려되어 방문을 닫고 아이를 앉혔다. 그리고 혼냈다. 아이는 서운하고 피곤한 몸을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울음을 다그치며, 어른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런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왜 너는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 몰랐니?”
그날 저녁, 아이를 씻기고 나니 소파에 누운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밥도 먹지 못한 채 고단한
하루를 끌어안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의 젖은 속눈썹이 마르기 전에 이불을 덮어주며, 나는 문득 묻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나는 여전히 어젯밤의 감정을 곱씹고 있었고, 아이는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빠 미워!” 내 팔을 툭 치고 나가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멈춰 섰다. 아이의 마음에 남은 어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이 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만큼은, 아이의 호흡에 나를 맞추기로.
평소처럼 아이스크림을 챙겨 픽업을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팩에 조심스레 얼음을 넣고, 작은 간식과 음료를 담았다. 아이를 보자마자 나는
말보다 눈을 먼저 건넸다. 다정한 눈. 말 대신,
기다리는 눈.
그리고 약속했다. 오늘은 화내지 않겠노라고.
오늘은 재촉하지 않겠노라고. 오늘은 아이가 가고 싶은 만큼 걷겠노라고.
영어학원을 마치고 우리는 공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적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고, 우리는 그 자리를
작은 축제처럼 꾸몄다. 풍선과 뽑기에서 얻은 작은 공들, 아이가 좋아하는 음료, 그리고 간식.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마음을 보았다. 아이가 말하길 기다렸다. 집에 가고 싶다고, 이제 그만 놀고
싶다고.
그렇게 흘러간 1시간 40분.
해 질 무렵,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오늘 너무 재밌었어.”
그 한마디에 나는 어제의 후회들을 조용히 접었다. 잘 접힌 미안함은 마음 한구석에 고이 넣어두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마치 연필로 써
내려가는 시 같다.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쓰고,
때로는 번진 자국 위에 새로 덧그린다.
그 모든 선이, 문장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한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사랑해, 우주야. 네가 내게 보여주는 작은 진심들을 나는 매일 배운다.
그 배움은 내게, 참 크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