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이 건넨 우주

아이스크림과 색종이 그리고 선물이라는 말

by 우주아빠


“아빠, 선물 있어.”


작은 목소리로 건넨 그 말은

우주가 내게 처음으로 건네준 마음의 포장지였다.

종이 한 장, 삐뚤빼뚤 줄이 그어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그림이

어느새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월요일과 수요일,

우주는 영어학원에 간다.

그날은 조금 특별한 리듬이 있다.

가는 길, 공원 앞 다이소에 들러

작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산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둘이 나란히 앉는다.

말은 많지 않지만, 입 안은 달콤하다.

서로의 하루가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우주가 유치원 가방을 열어

색종이에 칠한 걸 내민다.

“아빠 선물이야.”


바닐라 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

그 말이 내 마음을 먼저 녹인다.

형광펜으로 덧댄 색깔들,

어설프게 접힌 모서리,

그리고 쑥스러운 웃음.

작은 종이 한 장이

하루의 의미를 통째로 바꿔놓는다.


요즘 우주는

버스 번호를 외운다.

넘버블록스 덕분에

숫자와 영어에 동시에 빠져 있다.

“아빠, 87번 버스 어디 가?”

“여기 1번 3번 50번 지나간다!”


버스라는 숫자 행성에서

우주는 스스로 항로를 찾고 있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감탄하고,

그 속도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깨달아간다.


유치원에는 낮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귀갓길, 우주의 눈꺼풀은 늘 무겁다.

하지만 집에 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목욕, 저녁, 치카치카, 책 두 권.

작은 몸 하나로

하루의 질서를 끝까지 마무리한다.


오늘 저녁은

생선을 굽는다.

아내의 선배가 보내준

반건조 가자미 한 마리.

불 앞에서 냄새를 견디며 굽는 이 시간이

낯설지 않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나를 위해 굽고, 기다리고,

말없이 저녁을 차렸다.

그때 몰랐던 마음이

이제야 내 주방에서 되살아난다.


우주가 내민 줄 긋기 종이 한 장,

공원 벤치에서 받은 색종이 그림 한 장.

그 속에는

세상의 반짝임이 다 담겨 있다.


나는 오늘도

우주가 만든 작은 은하계를

조용히, 기꺼이

건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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