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은 기억이지만, 남는 것은 사랑이니까
뜨거운 한낮이 하루를 통째로 데워버리는 여름.
열기는 창문 너머로 들이치고,작은 아이는
그 속에서 자꾸만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
숨이 찰 정도로 더운데도, 몸을 가만히 두면 투정이 늘고 마음이 먼저 눅눅해지는 우주다
다섯 살짜리 여름은 그렇게 움직이며 빛난다.
유치원은 일주일 동안 방학에 들어가고,
이미 네 번이나 다녀온 뽀로로 테마파크는
잠시 쉬기로 한다.
우리는 생각 끝에 새로운 길을 택했다.
‘영화관’이라는 작은 우주로,
우주와 아빠의 첫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레고랜드에서 짧은 영상을 본 적은 있지만,
진짜 스크린 속 진짜 극장은 처음이다.
아이의 눈에 낯선 세상이 켜질 그 순간을 상상하며
하남 스타필드의 키즈존을 예매했다.
키즈존 32석 그 말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이 중간에 움직여도,
작은 탄성이 흘러나와도,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극장.
세상은 아이에게 맞춰줄 때 가장 다정하다.
조금 더운 날씨, 택시를 망설이다가
시간 맞춰 나선 버스는 한번의 환승 후
스타필드 메가박스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 짧은 여정조차 마치 작은 탐험 같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티켓을 손에 쥐고,
입구에서 만난 방석 하나에도 감탄이 나왔다.
작은 키에도 잘 보일 수 있게 준비된 세심함은
마치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하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들어가니 주변 아이들이 하나같이 팝콘을 손에 쥐고있었다.
우주의 눈빛도 살짝 흔들린다.
조심스레 “나도 먹고 싶어” 속삭이는 아이에게
나는 젤리를 건네고 가져온 사과를 입에 넣어준다
“끝나고 나가서 아이스크림 먹자”
그 한마디에 우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의 약속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운 순간.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스크린 보다 더 자주 우주를 바라본다.
화면 속 만화보다,
나란히 앉아 영화를 마주 보는 아이의 표정이
더 눈부시다.웃음이 터질 때, 긴장해서 의자에 등을 기대지 못할 때,
나는 몇 번이고 쿠션을 다시 받치고 등을 다독인다.
스크린 앞에 나가 손을 뻗는 아이들,
계단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속삭이는 친구들,
그 모두가 하나의 풍경처럼 사랑스럽다.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
그 영화를 보는 아이들의 존재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70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고,
우주는 내 눈을 바라본다.
“또 오고 싶어?”
그 물음에 아이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미소 하나에,
나는 오늘을 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전에 일어난 일은 잘 기억 못 해.
맞는 말일지 모른다.
기억은 물감처럼 희미해지겠지만,
그날의 따스함은 마음 어딘가에 정서로 남는다.
나는 사진을 찍고, 이렇게 글을 쓴다.
우주에게 남기기보다, 나 자신에게 되새기기 위해.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작은 손 하나에 세상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를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우주야,
너와 함께한 여름은
빛으로 기억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빛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