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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띄운 여름, 이름 하나 남기고

계곡에서 배운 사랑의 방식

by 우주아빠

여름은 언제나 물을 부른다.

햇살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덥다고,

바람이 멈추기라도 하면 답답하다고,

우주의 작은 몸은 성급히 다음 물놀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지난번, 양평의 글램핑장 개울가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아이의 가슴 안에 살아 있다.

그 기억은 아이의 여름을 재촉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물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이번엔 아버지가 추천해 주신 곳.

양평이 고향인 아버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조용한 계곡 하나를

알고 계셨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배기 계곡이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동했다.

그곳은 식당도, 펜션도, 상업적인 손길도 닿지 않은,

그저 물과 나무, 바람과 햇살만이 사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밀려들었다. 바닥이 훤히 비치는 계곡물은 손끝만 대어도 서늘했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숲의 천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주는 급하게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습관처럼,

입으로 직접 바람을 불어넣으며 튜브를 불었다.

작은 아이를 위한 공기,

그 안에는 오래된 사랑의 노하우가 담겨 있었다.

처음 물에 발을 담근 우주는

“앗, 차가워!” 하더니 10분도 안 되어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도 바람을 잊지 않는 이 계곡은

더위조차 망설이며 머무는 곳이었다.


그런데 우주는 차가운 물보다 더 따뜻한 사람 옆에 있었기에

두 팔을 할아버지 팔에 끼운 채,

한참을 물장난을 했다.

함께 튜브에 올라탔다가,

손바닥으로 물살을 가르며 웃었다.

“할아버지, 나 여기서 살래!”

그 말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물고기들이랑 친구 해야겠다.”

부모님도 의자에 앉아 발을 담그셨다.

아이의 웃음이 계곡의 물결처럼 번지자,

엄마는 연신 핸드폰 셔터를 눌렀다.

“잘 왔네, 여긴 정말.”

엄마의 말에 계곡도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이런 계곡 하나쯤 알고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복잡한 도심의 여름을 피해

우리 가족만의 아지트처럼 오롯이 머물 수 있는 곳.

아버지 덕분에 득템 한 이 비밀의 장소는,

이제 우리 여름의 고정 좌표가 될 것 같다.


아이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 했던 놀이 중 하나, 댐 쌓기.

“우주야, 여기다가 돌을 차곡차곡 쌓으면

물길이 달라지는 거야. 너만의 수영장을

만들 수 있어.”

그 말에 우주는 눈을 반짝이며

큰 돌, 작은 돌을 하나씩 옮겼다.

함께 쌓은 댐은

우주에게는 바다였고,

우리에게는 시간을 멈추는 둑이었다.

우주의 웃음이 깊어질수록

계곡은 더 반짝였고,

그 물살 사이로 갑자기 우주가 외쳤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그 한마디는

바위보다 단단하고

물보다 맑았다.

모두의 얼굴에,

그 순간 꽃이 피었다.

우리는 점심 즈음이면 나가 막국수와 수육을 먹으러 가려했지만

우주는 시간을 놓아주지 않았다.

“더 놀고 싶어요! 더 놀자!”

결국, 네 시간 반 동안 댐을 쌓고, 부수고,

다시 만들며

그 작은 수영장을 자기만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놀이는 끝나야 했다.

돌 위에 ‘우주’라는 이름을 남기고

“다음에 또 오자”는 약속을 한 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차에 오르자마자

우주는 할머니 무릎 위에 머리를 눕혔다.

작은 숨소리가 파도처럼 잦아들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던지

오늘 하루가 내겐 상으로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와 수산시장에서 회를 사고

집에서 조용히 한 잔을 기울였다.

우주의 물놀이 사진을 넘기며

하루를 다시 떠올렸다.


아이의 여름을

이토록 다정하게 채워줄 수 있어 고마운 하루.

오늘만큼은 내가

“우주야, 참 잘했어요.”

도장을 마음에 콕, 찍어준다.


그리고 나도.

이 계곡의 하루를

내 마음에 오래도록 붙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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