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북엇국, 나의 봄이 시작되는 자리]

by 우주아빠

세상엔 한 번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의 근원,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자리.


나에게 그곳은

‘한남북엇국’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따뜻한 국물이 번져오는 것 같은,

속이 먼저 기억하는 곳.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닙니다.

나의 오늘을 가능케 하는 연료이고,

창작의 심장이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고요한 교차로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만남을 합니다.

처음의 인연도, 오래된 우정도, 다시 꺼내는 다짐도

항상 이 자리에 앉아 나를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약속을 제안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그들은 압니다.

“아, 한남북엇국이구나.”

마치 숨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이 장소는 오래전부터 붙어 있었습니다.


이 집의 사장은 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2 분단 세 번째 줄,

내내 짝이었던 친구입니다.

도란도란 쪽지로 나누던 꿈들이

이젠 국물 속에 스며들어

하루하루 사람들의 속을 데우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고등학교대학교 동기

네 명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그 가족의 식구 같은 존재로,

17년이 넘도록

이 집의 음식과 사랑과 격려와 응원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아직도 영화를 할 수 있는 건

이 국물의 위로 덕분입니다.

지치고 고단할 때,

나는 이곳의 모둠회를 보며 마음을 회복하고

대구탕 한 숟갈에 내일의 대사를 떠올리고

제철 음식 한 점에 봄의 냄새를 먼저 배웁니다.


입안이 먼저 웃고,

마음이 나중에 따라 웃고,

그렇게 나는 살아냅니다.


오늘도 나는 봄이 왔음을

두릅 한 점으로 축하하려 합니다.

입 안에 꽃처럼 피어나는 산의 마음,

그걸 먹으며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이 따뜻한 신세를 졌는지.

하지만 마음의 빚은

다른 방식으로 갚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언젠가 내 영화 속에

이 국물의 온기를 담고 싶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보며

“이건 분명 한남북엇국에서 나온 거야”

말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도

한 그릇의 국물이 나를 데워줍니다.

그 속엔

친구의 손길이 있고,

그의 부모님이 있고,

그의 자식들의 내일이 있고,

나의 오래된 꿈이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한남북엇국,

그곳은 내게

봄보다 먼저 피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고맙다, 친구야.

그리고 또 한 번 고맙다, 이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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