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침묵하던 나에게 엄마가 답했다
나는 행복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행복이라는 말을 쓰곤 했는데, 내게서는 행복이란 게 어떤 것인지 도무지 정의되지 않은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힐링과 행복을 부르짖는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극단의 지점에서 행복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나에게 행복은 하나의 과업이며 이루어야 할 목표 같은 것으로 느껴졌었다. 아마 그래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선뜻 입에 올릴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꿈 속에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어 엉엉 울었다. 꿈이었는데도 너무 놀랐던지 눈이 번쩍 뜨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야심하고 쓸쓸한 새벽에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가 자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 손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외할머니만큼이나 따뜻한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나서 나를 한참이나 달래줬다.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통화를 마무리한 나에게 엄마는 메시지를 남겨 주었다. “우리 딸, 꼭 필요할 땐 어느 시간이라도 전화해 줘. 그게 우리 나원이에게도 좋고 엄마도 원하는 거니까. 우리 딸 나원, 항상 예쁘고 사랑스러워. 행복하게 잘 살자“
창 밖으로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뒤이어 메시지의 가장 마지막 문장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게 행복이라네”
유명한 철학자는 ‘행복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라 했고 또 어떤 이에게 있어 행복이란 충족감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이 정의하는 행복이 있는 듯하다. 엄마에게서 행복은 서로를 찾는 순간 속에서의 따뜻함이었던 것이다. 머나먼 미래의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 속에서 현재 이 순간의 따스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행복은 딱히 복잡하고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슬프고 외롭고 아픈 이에게 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는 두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만드는 게 아닐까. 행복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바로 지금 이게 행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