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사람을 괴롭게 발전시키는 것

열등감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다

by 나원

많은 이들의 학창 시절이 그렇겠지만, 나를 가장 괴롭힌 과목은 수학이었다. 10여 년간 치른 수많은 지필평가 더미 속에서 단 한 번도 100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유일한 과목도 수학이었다.



초등학생 때 수학 쪽지시험을 치르고 틀린 문제 개수대로 학급 친구들 앞에서 손바닥을 맞던 적도 있었고, 칠판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해 진땀을 뺀 와중에 선생님에게서 비속어를 들었던 적도 있었으며, 수학 학원에서는 모두 귀가하는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문제를 푸는 숱한 서러운 나날을 겪었다.



“너는 왜 매번 수학만 공부하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을 애써 무시해 가며 수학 공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투자 시간 대비 결과를 생각해 보면 딱히 대단한 성공 신화를 당당하게 써 보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취약하다 생각했기에 더 오기가 생기곤 했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보다 더 괴로운 것은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였던 것 같다. 또 괴로운 것은 그런 비교에서 나는 남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이 고개를 드는 때였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괴로웠던 것은 내 속의 그런 열등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과, 이는 한평생 지속되는 과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였다.




열등감의 시작은 내가 아닌 타인과의 비교이다. 그 속에 있는 우리에게 반기를 들고자 하는 이들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들이 열심히 외치는 저 말은 공허하게 흩어질 뿐 우리에게까지 와닿지 않는다. 나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전교 석차, 수능 등급, 대학 학점, 인사 고과… 우리 모두 타인보다 우위에 서고 그들을 밀어내야 내가 살아남고 얻어낼 수 있는, 그런 치열한 사회 속에 놓여 있으니.



생계의 수단인 의식주부터 시작하여 자동차, 액세서리…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학벌이나 직업, 더하여 우리가 즐기는 취미 생활까지도 가치와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연민 없이 진정한 나 자신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걸까?



모두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타인의 목소리와 생각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러한 생각조차도 그들의 시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내포하는 것일 수 있다. 오늘날의 만연한 비교 문화 또한 비교하는 각 개인이 모여 다같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며, 특정한 기준을 두고 나, 타인, 사회를 바라보는 합일된 방식이다. 그러니 어떠한 잣대를 두고 비교하는 타인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과도 같다.



때론 괴롭고 이런 스스로가 못나게 여겨져 미워지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우리 모두 비슷한 마음으로,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다. 열등함과 열등감은 같지 않으며 누구나 열등하지는 않으나 누구나 열등감은 느낀다.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아들러(Adler)는 열등감을 인간 행동의 근원이자 원동력이라 하였다. 그는 열등감이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이기에 중요한 것은 열등감 그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라고 보았다. 아들러에게 있어 열등감은 노력을 할 수 있는 이유이자 성장의 계기였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고 없는 것이기에 노력하고 없는 것이기에 성취해 낸다. 이에 기반한 감정은 열등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열등감은 다뤄지는 방식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 한다. 열등감과 자존심은 끊임없는 저울질을 하기도 하며 우월감조차도 그 뿌리는 열등감이다. 이처럼 열등감은 곧 질투, 경쟁심, 성취욕, 소망… 계속 그 형태를 변화해 간다. 그리고 열등감의 빈자리는 또 새로운 열등감이 채우게 된다. 열등감은 결코 달갑지만은 않고 때론 감추고 싶은 일면이기도 하지만 나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열등감을 느끼는 때의 내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장 진실된 ‘나’에 가까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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