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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유 Dec 28. 2020

내 잘난 맛에 살고 있지는 않나요?

잘난 상대도 나도 우리는 경쟁자 아닌 협력자입니다.  #제로섬게임 #윈윈

흔히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너는 너 잘난 맛에 사니?"

"냅둬라, 지 잘난 맛에 사는 앤데!"


잘난척 하는 사람도 재수 없고, 자기 잘난 것 아는 사람도 재수가 없습니다. 자타공인 잘난 사람도 너무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면 "제가 뭘요..아닙니다"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사실 내가 말 한 사람이었어도 당황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왜 남이 잘난 게 싫을까요?

남이 잘나면 상대적으로 '내가 못난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그렇습니다. 좁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유일한 자산인 인력으로 이 나라를 먹여 살린 우리나라의 배경이 그래요.


다른 사람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 전체 입학 정원에서 내가 들어갈 자리는 하나 없어지는 거니까요. 같은 과를 지원했으면 상대가 들어가면 나는 못 들어가는 상황이 맞습니다. 삼성 기업에 지원했는데 상대방이 들어가면 나는 탈락되는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특히 출신 배경이 비슷하다면 모두가 목표로 바라보는 곳이 비슷했습니다.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나 항로도 서로 닮아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게 있습니다. 이제는 대다수가 더이상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요. 선택의 옵션이 늘어나서 저마다의 목표와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졌고  가능성의 그릇 자체가 매우 커졌습니다. 예전과 같이 일 하나를 이루는 방법이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셀 수 없는 수 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어요. 내가 나서서 직접 방법을 만들어  수도 있습니다.


예전같이 정해진 풀에서 1을 상대가 가지면 내가 가진 게 1만큼 줄어드는 상황을 '제로섬 게임 이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세계가 다원화되고 세분화되면서, 또  저마다의 스타일과 선호가 생겨나면서 지난 날의 한정된 풀 개념이 깨졌습니다. 우주처럼 새로 증폭해 나가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가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일을 크게 하는 게 본인에게 더 이득이 됩니다. 1을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나의 1과 합쳐 3을 세상에 주는 게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심지어 그 가치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이득입니다.


제로섬 사회가 아니니까요. 더이상 우리 라이벌은 같은 일을 하는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 는 나의 강점을 살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거에요. 어떻게 가치의 양을 가능한 크게 늘릴 수 있을까가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닌 협력자입니다. 서로의 강점을 서로 북돋아주고, 지지해주면 더 큰 시장과 수요가 생겨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볼까요? 같은 퍼스널 브랜딩 전문가 두 명이 있습니다. 같은 서비스와 가치를 제공하지만 서로 윈윈하며 더 큰 시장을 창출해 냉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대의 강점인 시각적인 브랜딩과 나의 강점인 타겟팅을 서로의 특장점으로 포지셔닝하면 됩니다. 서로를 칭찬하면서 언급해줍니다. 자연스레 상대와 더불어 나를 연결해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나를 상대를 통해 찾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설령 같은 시각 브랜딩을 장점으로 갖는 사람이라도 라이벌이 아니에요. 그와 나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기에 전달하는 그릇과 방식에서 차이가 자연스레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다양한 선호도와 방식을 가진 고객의 선택을 거치게 되겠죠.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상대가 기혼의 아이 엄마라면 비슷한 배경에 있는 삼십대 여성이 상대를 택할 거에요. 반면에 sns에 익숙한 투명한 나의 작업 프로세스를 선호하는 사람은 나를 택하겠죠.

심지어 두 사람 모두의 고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잘난 멋을 인정해 주세요. 잘난 맛에 살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나도 내 잘난 맛으로 사세요. 우리 모두가 다른 방면에서 실제로 잘난 게 사실이니까요.


더 이상 내가 있는 우물에 누가 있는지 견제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을 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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