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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떨어졌다.

좋은 걸까?

by 납작만두

3월 말, 시험을 보러 이동시간만 5시간을 들여서 타 지역에 갔다. 시험을 볼 땐 이건 100프로 합격하겠다. 아니 100까진 오바고 89프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시험이 쉬었기도 했다. 이번 시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몇 개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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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험의 응시율은 3분의 1 정도였다. 지역도 지역이고 서류 합격률 자체가 높다 보니 허수가 많았다. 사람이 없는 만큼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시험관이 말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다 같은 종목의 시험을 본다고. 다들 내 경쟁자였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나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출제범위에 깊게 파고 들어서 공부했다. 그냥 기존의 방식. 기사 수준으로 공부하려다가 나와있는 과목을 보고 방향을 틀어서 문제집을 구매했다. (5만 원 넘게 들었다.) 뼈가 시렸지만, 합격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다음에 이 자격증 시험을 봐버리자 생각하며 책을 구매했다. 거기에 나온 문제들은 대략적으로


OOOO법령에 따른 XXX관련된 것으로 옳은 것.

(1) XX를 YY 하기 위해서는 O 년의 AA 한 과정이 필요하고 ~~ 한다.

(2) XX를 ZZ 하기 위해서는 O 년의 AA 한 과정이 필요하고 ~~ 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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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장문의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받은 문제는 당황스러움이었다. 느낌으로는 [ A = B ] 이런 개념이 있다면 문제로 다음 중 A는? 하고 물어본 기분이었다. 쉬운 것도 쉬운 거지만, 짧고 단답형이라서 내가 여태 공부한 내용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

그래도 장점은 깊게 고민할 게 없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총 40문제로 시험 시간의 절반이 지나면 퇴실 가능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받자마자 당황했지만 문제를 풀었다. 단답이라 고민할 게 없이 답을 골랐다. (그렇다고 다 정답을 고른 건 아니고 모든 문제를 아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다 풀고 시계를 봤을 때, 딱 시험 시간의 절반의 절반 정도 지나있었다. 지금부터 2배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내 자리는 나랑 같은 줄 사람과 내 대각선 오른쪽 뒤의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대략적으로 보이는 위치였다. 문제를 다 풀고 쓱 보는데 다들 정말 너무 열심히 풀고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시험 문제 나만 다른 거예요? 다들 뭘 풀고 있는 거예요?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다가 문제를 한번 더 풀어봤다. 10분이 지났다. 앞으로도 20분이나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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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시험은 간간히 계산 문제가 나올 수 있는 시험이었다. 원래 다른 곳에서 보는 시험이라면 공학용 계산기가 허용되었겠지만, 이번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다만 일반 계산기는 가능했다. 내가 가진 계산기라고는 공학용밖에 없어서 다이소에 가서 2000 원주고 계산기를 샀다. 계산기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계산기를 쓸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간단한 산수 정도? 하지만 들고 간 보람을 위해서 굳이 계산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그렇게까지...? 싶은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지금 뭐 풀고 계신 거예요? 나랑 문제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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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험에서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시험 시간의 절반이 지나고 퇴실이 가능해서 시간이 되자마자 정리해서 나왔다.

답안지를 제출하며 제일 앞에 있던 다른 분의 주관식 1번 답이 보였다. 정확히 뭐라고 쓰셨는지 안보였지만, 단 6글자로 끝나는 내 답과 완전히 다른 3줄의 긴 서술형 답을 쓰고 계셨다. 진지하게 이 시험은 사람마다 문제가 다르구나.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앞선 얘기들이 합쳐진 시험을 보고 나서 어제 결과가 나와서 확인했다. 사실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합격하면 메일로 결과 확인하라고 나오는데 결과가 안 나와서 들어가 봤더니 떨어졌다는 결과창이 나와있었다. 사실 너무 멀고 시험 보러 간 지역에 사람도 없어 보여서 무섭기도 하고 해서 붙어도 고민이다. 싶었던 시험이었다. 물론 붙으면 면접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뭐든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결과를 확인하고 "아! 짱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짜증 나는 건 짜증 나는 거고 이직이 하고 싶고 부업이 하고 싶은 건 또 하고 싶은 거라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리고 조금 일찍 나와서 러닝을 뛰었다. 이렇게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았더니 사실 시험에서 떨어진 거에 대한 큰 타격이 없었다. 아쉬운 건 하나. 직무가 나랑 정말 잘 맞을 거 같았는데 그거 하나 아쉬웠다. 아 하나 더 생각났다. 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는 거. 까지 2개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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