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으로
망했다고 생각했던 면접에 붙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출근을 하게 됐다. 길었던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더 길어질 반 백수 생활이 시작됐다.
경마장으로 출근이라니 떨린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해서 걱정이 됐다. 못 일어나서 지각하는 모습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스마트폰아. 너만 믿을게. 잘 부탁해. 믿는다 해놓고 믿지 못해서 새벽 4시에 깼다. 다시 잤더니 5시에 깼다. 다시 잤다. 눈 떠보니 6시였다. 어차피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이쯤 되면 그냥 일어날 법도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잤다. 한참 잘 자다가 불안해졌다. 한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근데 알람은 왜 안 울리지? 설마 하는 생각에 눈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7시 24분. 미친, 지각이 코앞이었다.
일하는 곳은 1 지망이 아닌 2 지망으로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배차 간격 때문에 8시 5분 차를 놓치면 지각이다. 적어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 와중에 밥도 먹으려니 시간이 많이 촉박했다. 그래도 한국인은 밥심. 밥을 안 먹을 순 없다. 밥을 국에 말아 물처럼 먹었다. 아니 마셨다. 빠르게 씻기 위해 벅벅 세수하고 컥컥 양치했다. 전날 짐을 미리 챙겨놔서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를 마쳐 늦지 않게 버스를 탔다.
뭐든 처음은 떨리기 마련이지만, 일에 대한 후기가 몇 개 없어서 더 긴장되고 떨렸다. 그 와중에 본 게 진상이 많아서 힘들 수 있다는 후기였다.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진상 걱정이 됐다. 혼자 긴장하고 걱정하는 사이에 건물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처음 오셨어요? 신규 자세요?”
“네….”
“3층 사무실 가시면 과장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이따 봐아요~”
네에…. 반겨 주시는 게 따뜻하다. 긴장이 됐지만 긴장하지 않은 척. 밝은 척. 나 원래 밝은 사람이고 인사 잘하는 사람인 척. 열심히 척하며 보는 사람들마다 인사했다. 묵언수행만 몇 시간을 하던 환경에만 있다가, 단 시간에 인사만 몇 번을 한 건지. 근무 시작 전부터 목이 살짝 아팠다.
금요일은 사람이 가장 없는 편이라 했다. 그래서 진상도 없었던 걸까. 걱정했던 것보다 진상은 없었다. 오늘은 일도 쉬운 곳에 배정받아 완전 꿀벌 그 자체였다. 오늘은 첫날이라 다른 사람과 함께 근무를 했다. 그분이 1층보다는 2층. 2층보다는 3층이 일하기 더 수월하다고 말해주셨다. 3층은 아니었지만 2층도 굉장히 한산해서 할만했다. 마사회 알바를 검색하면 꿀알바라고 떠서 오히려 너무 쉽게 생각하다가 생각보다 힘들어서 일을 못 버틸까 걱정했는데,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아프다는 점을 빼면 괜찮았다. 일하면서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늘 하루종이 한 일은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하고 입장권 안 찍은 분들에게 입장권 찍고 들어 가주세요. 외치는 일.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입장권 찍고 나가주세요. 외치는 일이 끝이었다.
입장과 퇴장 시에 필수로 입장권을 찍다 보니, 잠깐 나가는 일이 생겼을 때 손님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하는 말이 너무 귀여웠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른들이 나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한다. ‘아이, 집에 가야지.’ ‘펜 좀 사 올게요.’, ‘책, 책만 바꿔올게요.’ 그 사람이 귀엽다는 건 아니고, 하는 행동이 마치 유치원생이 선생님께 눈치 보며 변명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펜을 사도 책을 바꾸더라도 찍고 나가셔야 하는데……. 입장권 좀 찍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