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대한민국의 위풍당당한 바람이 불어 온다.

by 맑은하늘


나에게는 바람이 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초등학교 때 별천지일 것만 같은 미국으로 이민 갔다. 미국에는 꽃도 하트, 별모양이고, 디즈니 만화 속 공주들이 살 것이라고 상상했다. 이름도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로스앤젤레스라는 긴 말과 L.A.라는 알파벳 두 글자가 같은 도시의 이름일 수 있을까? 미국에 대해 상상할수록 나는 머릿속에서 환상을 그려냈다.


막상 도착해서 바라본 미국은 한국과 똑같았다.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고, 각자의 집에서 잠을 잤다. 특히 내가 처음 살았던 L.A. 는 평생 한국말만 하고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다시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이사 가는 큰 결단을 내리셨다.


이사 후 개학 첫날,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실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섰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 나는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했다. 아이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도 있냐는 표정을 짓자 나의 두 눈은 갈 곳을 잃고 심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역에 침범한 불청객 같아서 진땀이 났다. 얼마 후에 프랑스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다들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며 반겨줬다. 어릴 적 엄마 잡지 중에서 로엠걸즈 모델은 항상 금발에 푸른 눈이었다. 다르게 생긴 것이 신기해서 모델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잡지 속 아이들 사이에 있으니 이제 그 아이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모르는 것이 화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국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한식에 진심이신 엄마는 도시락도 한식으로 싸주셨다. 단골 반찬은 불고기와 달걀말이, 각종 전이었다. 흑미를 넣은 보라색 밥, 기장을 넣은 노란색 밥, 보리를 넣은 톡톡이 밥 등 밥도 다양하게 싸주셨다. 이렇게 예쁜 음식을 처음 본 아이들은 아기새처럼 내 옆에 모여들었다. 나는 음식 이름을 가르쳐주고 발음을 똑바로 한 사람한테만 맛볼 수 있는 행운을 허락했다. 엄마덕에 한식 전도사가 되어 뿌듯했다.


5학년 때 수업 시간 중 동양 역사를 배웠다. 드디어 한국에 대해 배운다니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왔다. 기다리던 수업 첫날에 중국만 배웠다. 이제 첫날이니까 괜찮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우리는 칭기즈칸과 진시황제에 대해서만 배웠다. 한국에 대해 배운다고 들떴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허무하게 중국에 대해서만 배운 후 선생님이 동양화를 그려보자고 하셨다. 흰 도화지에 네임펜으로 간단하게 산과 강을 그리고 "人, 山, 水, 天" 한자를 그려 넣으라고 하셨다. 한자만 쓰는 게 못마땅해서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아시아에 나라들이 많은데 한자대신 다른 언어로 적어도 돼요?" 황당한 질문에 선생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언어로 써도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로 "사람, 산, 물, 하늘"을 그림에 정성스레 적었다. 한글까지 알리다니,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6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에게 매일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자고 했다. 외국 친구들은 높임말을 특히 신기해했다. 나한테는 "안녕", 선생님한테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제자가 기특했다.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도 전파해 뿌듯했다.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며 한글도 알려줬다. 아이들이 한글에는 동그라미와 네모가 많다고 흥미로워했다. 한 번도 생각 못 했었는데 좋은 지적이었다.






세계에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을 보며 요즘 나는 발 뻗고 잔다. K-drama가 조금씩 유명해지더니 K-pop, K-food, K-beauty 등 전 세계에 한류가 열풍이다. 어릴 때 미국에서 한국인만 보러 갔는데 성황리에 미국 콘서트를 마쳤다는 기사들을 보고 나는 최근까지도 한류를 안 믿었다. 그러던 2022년에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소녀가 한류에 대한 확신을 줬다. 소녀는 엄마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같이 보다가 자기도 빠져들어 요즘에는 박신혜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들을 역주행 중이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한국 드라마까지 줄줄 읊는 소녀가 신기했다. 짧은 비행시간 동안 소녀에게 한글로 이름도 써주고, 한글도 가르쳐줬다. 우리나라에 관심 가지는 게 참 고마웠다.


이제 많은 이들이 한국인을 알아보고 반겨준다.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찾으라는 지리 숙제에 쩔쩔 헤매던 다른 학교 아이들한테 알려줄까 말까 소심하게 고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말과 역사에 대해 관심 가질 때까지 한류 바람이 더 세고, 강하게 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위풍당당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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