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1456년, 한양 근교. 가을.
어머니의 무덤은 작았다.
언덕 중턱에 있었다. 소나무 두 그루가 옆에 있었다. 바람이 불면 소나무가 소리를 냈다. 낮은 소리였다. 오래된 소리였다. 시습이 어릴 때도 그 소리가 있었다. 지금도 그 소리가 있었다. 소나무는 변하지 않았다.
시습은 무덤 앞에 섰다.
오래 서있었다.
무덤을 보았다. 봉분이 낮아져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 봉분이 낮아진다. 땅이 죽은 사람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땅은 언제나 서두르지 않는다.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이 땅 속에 계신가. 아니면 이 소나무 소리 속에 계신가. 아니면 지금 이 바람 속에 계신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딘가에 계실 것이다. 있었던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시습이 어릴 때 돌아가셨다.
시습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흐렸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었다. 오래된 것일수록 흐려진다. 그러나 흐려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흐린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안개가 낀 산이 없는 산이 아닌 것처럼.
어머니의 손을 기억한다. 손만 기억한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그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번이나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감촉이 남아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머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오래간다.
시습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렸다.
이마가 땅에 닿았다. 차가웠다. 가을 땅은 차가웠다. 그러나 차갑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차가움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만이 차가움을 느낀다.
오래 그 자세로 있었다.
얼마나 있었는지 몰랐다.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가 소리를 냈다. 어딘가에서 새가 울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단종이 폐위되던 날도. 사육신이 죽던 날도. 세상은 언제나 평범하게 돌아갔다.
그것이 세상이다. 세상은 한 사람의 일에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이 태어나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잔인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이 세상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멈추는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시습은 입을 열었다.
소리를 내어 말했다. 처음엔 작게. 그러다 조금 크게.
"어머니."
대답이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가 소리를 냈다. 그것이 대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도 괜찮았다.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들리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먼저였다.
"저는 이상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 말이 나왔다.
준비한 말이 아니었다. 준비하지 않은 말이 더 진짜인 경우가 있었다. 이 말이 그랬다.
이상한 세상. 그렇다. 이상한 세상이다. 임금이 죽으면 다음 임금이 오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데 — 임금을 힘으로 빼앗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이다. 옳은 것이 옳다고 말하면 죽는 세상이다. 미쳐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이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 어느 세상이 이상하지 않은가. 세종 임금이 계실 때도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 그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이상했다. 그 이상한 세상 속에서 이상하지 않게 살려는 사람들이 — 결국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이 세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저는 오늘 떠납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언제 돌아오는지도 모릅니다.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하면서 안다. 말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말하면서 안다. 나는 지금 이것이 마지막 인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었는데 — 말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말이 생각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나왔다.
놀랐다. 자신이 그 말을 할 줄 몰랐다. 이상한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모순인가. 모순이 아니었다. 이상한 세상에 태어났어도 — 태어났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었다. 태어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것도 모른다. 느끼는 것은 태어난 것들만의 것이다.
그때였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냐?"
시습이 고개를 들었다. 돌아보았다.
노파였다.
언제 왔는지 몰랐다. 소나무 옆에 서있었다. 작은 몸이었다. 허리가 굽었다.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 눈이 작았다. 그러나 눈빛이 맑았다. 나이가 든 사람들 중에 가끔 있는 눈이었다. 오래 살면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 그것들에 흐려지지 않은 눈.
시습은 그 눈을 보았다.
이 노파는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은 눈이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나이까지 산 사람의 눈이다.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은 — 진짜를 말한다. 진짜를 말하는 사람은 — 진짜를 듣는다.
"모릅니다."
시습이 대답했다.
그것이 진짜 대답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이 대답이다. 모른다고 말하면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모른다는 것은 아직 걷고 있다는 것이다. 다 안다는 것은 멈춰있다는 것이다.
노파가 시습을 보았다.
위아래로 훑었다. 오래 보았다. 판단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냥 보는 눈이었다. 어린아이가 보는 것처럼 — 그냥 보는 눈.
그리고 말했다.
"잘 갔다 오너라."
그 말이 공중에 떠있었다.
시습은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좋은 말은 서두르면 안 됐다. 좋은 말은 천천히 내려앉아야 했다.
잘 갔다 오너라.
이 노파는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잘 갔다 오너라고 했다. 어디인지 모르는 곳을 잘 갔다 오라고 했다. 어디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르면서 가는 것도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노파는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모른다. 오래 산 사람은 필요한 것을 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안다. 그것이 나이가 주는 것이다.
시습이 노파를 다시 보았다.
노파는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 멀리 산을 보고 있었다. 시습과 나눈 말을 이미 잊은 것 같았다. 아니면 잊은 척하는 것이었다. 잊은 것과 잊은 척하는 것도 — 결과는 같은 것이었다.
시습은 절을 했다.
노파는 돌아보지 않았다.
괜찮다. 절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것이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가 받는 것보다 내가 내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보내지 않으면 안에 쌓인다. 쌓이면 무거워진다. 가볍게 떠나려면 내보내야 한다.
시습은 어머니의 무덤을 다시 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오래 있게 된다. 오래 있으면 떠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떠나야 했다.
어머니. 저는 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파가 말했습니다. 잘 갔다 오너라고. 그 말이 어머니가 하시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방식으로 전해주시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살겠습니다.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방법으로 — 살겠습니다.
시습은 일어섰다.
몸을 돌렸다.
동쪽이었다.
왜 동쪽인가. 해가 뜨는 쪽이기 때문이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언제나 동쪽에서 뜬다. 어제도 동쪽에서 떴고 오늘도 동쪽에서 떴다. 내일도 동쪽에서 뜰 것이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 무언가가 시작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끝나는 방향이 아니라 시작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멀리 산이 있었다. 겹겹이 쌓인 산이었다. 안개가 낮게 깔려있었다. 산이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길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길은 있다. 보이지 않는 길과 없는 길은 다르다. 안개가 걷히면 보일 것이다. 걷히기 전에도 길은 있다. 있는 길을 걷는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걷는 것이다.
시습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노파의 말을 생각했다.
잘 갔다 오너라.
그 말이 계속 들렸다. 걸을 때마다 들렸다. 발소리처럼 들렸다. 발이 땅을 밟을 때마다 — 잘 갔다 오너라, 잘 갔다 오너라.
이 말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라는 것은 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은 알려준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사라진다. 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인가.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 가는지도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도 잘 갔다 오라고 했다. 어디인지 알아야 잘 다녀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다. 왜 가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 잘 갔다 오라고 했다.
조건 없는 말은 무겁지 않다. 무겁지 않아서 오래 들고 다닐 수 있다. 오래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진짜 선물이다.
해가 떴다.
동쪽에서 떴다. 산 너머에서 빛이 먼저 왔다. 빛이 안개를 조금 걷어냈다. 산이 조금 더 보였다. 길이 조금 더 보였다.
그렇다. 이렇게 된다. 걷다 보면 빛이 온다. 빛이 오면 조금 더 보인다. 조금 더 보이면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전부 보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조금씩 보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시습은 빛을 향해 걸었다.
어머니의 무덤이 등 뒤로 멀어졌다. 한양이 멀어졌다. 세조 측근의 눈이 멀어졌다. 저잣거리가 멀어졌다. 사육신의 무덤이 멀어졌다.
모든 것이 멀어졌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멀어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등 뒤에 있는 것은 여전히 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나를 만든 것이다. 내가 걸어온 것들이 나다. 버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버린 것들이 — 가장 깊이 남는다.
걸음이 가벼웠다.
이유를 몰랐다. 무거운 것들을 두고 왔는데 — 가벼웠다. 버릴수록 가벼워졌다. 그것이 역설이었다. 그러나 역설이 진실인 경우가 있었다. 이것이 그랬다.
모르면서 걷는다. 가벼운 몸으로 걷는다. 동쪽으로 걷는다. 해가 뜨는 쪽으로 걷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덕을 넘었다.
한양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무덤이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 두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 길이 있었다.
길고 좁은 길이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시습이 그 길을 보았다.
저 길이 나다. 저 길이 앞으로 내가 걸어갈 것이다. 어디서 끝나는지 모른다. 끝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길은 있다. 있는 길이다. 걸으면 된다.
걷기 시작했다.
발이 땅을 밟았다. 땅이 발을 받아주었다. 바람이 불었다. 가을바람이었다. 차가웠다. 그러나 차갑다는 것이 좋았다.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노파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잘 갔다 오너라.
시습은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입술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진짜 웃음이었다. 배운 웃음이 아니라 — 느끼는 웃음이었다.
가겠습니다. 잘 갔다 오겠습니다.
길이 안개 속으로 이어졌다.
시습이 그 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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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첫날 밤이었다. 처음으로 하늘 아래 혼자 누웠다. 별이 가득했다. 세종 임금과 함께 읽던 시가 생각났다. 그 시를 읊으면서 — 처음으로 진짜 웃음을 웃었다. 이것이 자유인가. 춥고 배고프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벼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