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c quoque transibit!
요즘 대한민국은 어렵고 시끄럽지만 나는 편안한 상태다. 내 생에 두 번째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있다. 그 첫 번째는 뭐였냐고? 97년 11월 19일에 있었던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른 후 성적표가 나오기 전 약 1개월이 가장 행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이나 그때나 느끼는 행복감의 본질은 같다. 그것은 바로 '자유'.(성적표는 97년 12월 20일에 발표되었다.) 나는 18년 10개월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한 것이 아닌 창업을 했다. 흔한 대표라는 이름이 아니라 '가치디렉터'라는 자작 직함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요즘은 퇴사를 한다고 하면 걱정을 해주는 편이다. 나가서 뭐 하고 돈 벌어먹고 살 건데...라는 동일한 뉘앙스의 질문들이 돌아온다. 나는 내 사업 아이템이기에 돈 많이 벌면 커피 한잔 사드릴게. 그때 얘기 해줄게요. 라며 얼버무렸다. 약 30일 정도 지난 지금은 그런 연락도 오지 않는다. 너무 고요하다.
나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회사에 직원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꿈꾸는 것처럼 때 되면 승진하고 연봉도 오르고 적당히 휴가로 해외도 다녀올 수 있는 안정감을 원했었다. 그런 나의 바람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해를 품은 달이라는 드라마를 아는가? 주연인 한가인배우가 '액받이무녀'로 왕옆을 지킨다. 나는 직책자로 한부서의 팀장으로 있을 때 '욕받이'였다. 매일 부장과 회의를 하면 실적과 현안으로 욕을 먹었다. 내가 원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미 그 부서로 발령이 날 때 소위, '찍혀있었다'. 당연한 결과 이겠으나 나는 그렇게 직위해제가 되었다. 군대로 비유하면 중대장이 이등병으로 강등이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목표를 잃었다.
그런 생활을 이어 가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게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나의 내면은 자기 파괴적인 언어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미치겠다"라는 문장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진짜 미칠 것 같았다.
스트레스 받는다는 이유로 폭식과 폭음을 하고 운동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간신히 도로가 쪽으로 차를 세우고 정신을 차렸다. 나는 심장마비 증상인 줄 알았다. 검사 결과 '공황장애'였다.
이런 생활은 4년간이나 더 이어졌고
나는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즈음
갑자기 슬픔도 노여움도 사라졌다.
단지 내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에 내 얼굴이 보였다.
너무 불쌍했다.'아, 그래 바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책을 보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의 대부분은 공짜라는 것을 아는가?
내 아이의 웃음 소리, 성장하는 모습,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 찬란한 도시의 야경, 내 사랑하는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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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느끼지 않으려 하는 단계까지 가면
슬픔과 노여움에 잠식되어 공짜로 주는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 가리니!
그렇게 지나가더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때, 내가 살아야 할 때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