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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닛타임즈 May 17. 2022

대안은 없다, There is no Plan(et) B

영화 'Planet A' 이하루 감독 인터뷰

영화는 기후 위기, 종차별로 인한 비인간동물 대학살, 여성동물 착취, 자본주의와 과소비, 쓰레기 문제, 수도권 중심주의,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담았다. '이렇게 많은 주제를 담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이 모든 문제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총 15개의 뮤직비디오가 담겼으며 활동 기록, 농장 조사,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이어 붙인 75분 가량의 옴니버스식 뮤지컬 다큐멘터리다.


지난 4월 29일 은평구 전환마을부엌 밥풀꽃에서 열린 'Planet A' GV 상영회가 열렸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하루 감독과의 인터뷰를 담아봤다.




Q. 먼저 영화 상영을 축하드려요. 감독님께서 세상에 내놓은 영화를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A. 고맙습니다! 주제가 무거운 만큼 영화를 만들면서 부담감도 컸던 것 같아요. 외롭고 긴 작업이었는데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어 아주 감격스럽고 홀가분합니다. 첫 시사회 때는 OST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많이들 보러 와주셔서 그런지 상영 내내 말 그대로 덜덜 떨고 있다가,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펑펑 울어버렸어요. 지금은 국내외 영화제에 열심히 출품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배급과 개봉까지 이어져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영화의 구성이 조금 독특한데요. 영화에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고 총 15편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전부 음악이 사용되는데요. 영화 구성에 대해서 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다루고 있는 주제가 많다 보니,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주면 주장에 힘이 더 실릴 것 같았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고요.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곡을 넣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 주어 15팀, 총 35명의 음악인들이 함께했어요. 그렇게 OST로 사용될 컴필레이션 앨범을 먼저 만들고 전곡의 뮤직비디오 15편을 제작해 이어 붙인 것이 뮤지컬 다큐멘터리 'Planet A'입니다.


'Planet A' OST 동물해방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  © 나도&옥과

 

Q. 이제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영화 제목 Planet A의 뜻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 제목을 처음부터 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건 아니고요, 앨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을 즈음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숲 속을 걷다가 머릿속을 스쳤던 것이 바로 'Planet A'였어요. 유럽에서 기후 위기 시위에 참여해 외쳤던 "There is no Plan(et) B"라는 구호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Fantastic Planet'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면서 다른 지구 생명체와 자연, 그리고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하는 모습, 이를 '발전' 혹은 '경제 성장'이라며 정당화하고 스스로 잘한다(A)고 평가하며 우쭐해하는 오만한 행태를 반영하는 나름대로 풍자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Q. 제목에 감독님께서 담고 싶었던 주제가 담겨 있군요. 감독님께서 영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겠네요. 현실의 어떤 내용을 담아내고 싶으셨나요?

 A. 종차별로 인한 비인간동물 대학살, 여성동물의 재생산권 착취, 난민/장애인/성소수자/성노동자 인권, 기후 위기, 자본주의와 과소비, 쓰레기 문제 등 여러 주제를 다 담고 싶었어요. 욕심이 많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따로 의도하지 않더라도 함께 녹여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과의 분리와 단절, 다른 존재를 향한 타자화, 대상화 등 사실상 같은 원리로 인해 작동하는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을 함께 마주하고자 했습니다.


영화 'Planet A'의 스틸컷  © 이하루 감독

 

Q. 말씀하신 대로 영화에서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의 대상인 닭과 돼지 등이 나오는데 이를 예로 들어서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누군가의 토막 난 살점을 구매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그 살점의 주인이 어떠한 삶을 살다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알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시설'에 갇힌 채 태어나, 그곳에서 벗어나 '동물답게' 살기 위해 평생을 저항하고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현장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깔끔한 도시로 옮겨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이 거대한 축산업 체계의 구조적인 폭력을 목격함으로써 발견할 스스로의 가해자성에 대해서는, 각자 반성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어요.

덧붙여 육식주의 구조로 인한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릴 여지가 있는 소비주의적 비거니즘을 경계하고자 했습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 폭력적인 시스템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연대하며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움직임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에게 전해주어, 서로에게 상호의존적인 힘이 되어주고 싶기도 했어요.


'목소리 없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  김영찬



Q. 그렇다면 감독님이 이런 사회적 문제, 특히 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제가 소수자 운동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살다 보니 제가 가진 수많은 소수자성을 서서히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각자의 정체성이 '소수냐 다수냐'에 상관없이 그냥 다들 알아서 잘 살면 좋을 텐데... 이미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심각한 차별과 억압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투쟁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백인 중산층 남성이 기본값인 유럽 사회에서 아시아인이자 빈민 여성으로 지내던 시절에 난민과 노숙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된 것 같기는 하네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동물해방운동까지 접하게 되었고요. 최근에는 트랜스젠더와 게이라는 당사자성을 추가로 갖게 되면서 관련 소수자 커뮤니티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Q.영화 상영 일정으로 바쁘실 것 같은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요즘에는 영화에서 못다 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있습니다. 'Planet A'가 뮤지컬 영화로 포장된 것처럼, 2014년 말부터 약 6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여행책인 척하는 동물해방 혁명서 같은 게 나올 것 같아요. 이미 출판사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에는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와중에 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OST에 참여하기로 했고, 강릉에서 제작하는 동물권 관련 피아노 음반의 프로듀싱과 피처링 몇 곡을 맡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불러주시네요. 그렇지만 저의 영감과 창조력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올해에는 영상 작업을 완전히 쉬자는 신념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카메라도 팔아버렸고요.


Q. 앞으로 감독님의 계획과 일정에 대해서도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5월에는 공동체 상영회 일정 8개가 잡혀 있어요. 먼저 5일 대전, 6일 대구, 7일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내려갑니다. 13일 강정마을과 21일 성미산학교에서 진행하는 상영회가 특히 기다려지네요. 6월에는 전라도 지역 위주로 투어를 다닐 예정이에요. 모든 상영회 출장을 지역에서 외롭게 싸우고 계신 분들과 연결되는 뜻깊은 자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어, 현대 예술이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급진적인 메시지와 방향성을 문화예술계에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이하루 감독의 'Planet A'는 제4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장편 부문 경쟁작으로 선정되었다. © 이현우


이하루 감독의 영화는 지난 5월 2일 제4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장편 부문 경쟁작으로 선정되었다. 영화제는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아리랑시네센터 아리랑인디웨이브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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