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다. 시계추가 흔들리는 소리만 일정하게 들린다. 어떤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평온하다.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이 나는 좋다. 이런 시간에 내 마음 안에서 내밀하게 들리는 소리를 들어본다.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나의 내면이 내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글을 안 쓰면 좋겠어요."
초등 저학년 때부터 내게 글쓰기와 논술을 배우고 있었던 학생이었다. 이 말을 할 때는 중학생 까까머리 남학생이었는데 내가 습작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습작을 하는 동안 아이들한테 소홀히 하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글을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반영을 표현한 거였다. 그때는 무심히 흘렸던 그 말이 지금은 왜 선연히 기억이 날까?
"당신이 1주일에 1~2번만 글을 쓰면 좋겠어."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지난 4년의 상처를 꺼내게 되었을 때 몰려오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아픔과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나의 쏟아지는 가시로 그도 그 과거 앞에 섰을 때 휘몰아치는 자책으로 아프고 괴로웠었다. 그리고 내가 글쓰기에 열중할수록 그와 다정하게 마주하기보다는 무심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런 말을 꺼내었다.
"알겠어요. 그럴게요. 나도 글을 쓰면서 과거가 떠올려져서 많이 힘드네요."
그러나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글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연재를 쓰면서 그 기간 동안 가볍게 시작한 처음과 달리, 내 기획 의도와 달리 나는 심하게 마음앓이를 했었다. 나와 함께 한 남편, 그도 마음앓이로 다시 과거의 시간에서 혼자 그만의 아픔을 삼켜야 했다. 우리는 씁쓰레한 뿌리를 삼키듯 그런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지금의 나를 본다.
글쓰기는 내 깊은 곳의 아픔을 꺼내게 해 주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숨고 싶었다. 연재라는 어떤 틀의 약속 때문에 나는 어쨌든 쓸 수 밖에는 없었다. 지금은 그 형식에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15화까지 나는 못 왔을 것이다.
나와 그는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는 현재의 일로 다투고 힘들지는 않았다. 연재를 쓰면서 과거의 일로 내가 아팠고, 그도 함께 아팠다. 상처 입은 자의 부르짖음을 그는 다 들어주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그는 속속히 이해하게 되었다. 공감하게 되었다. 그게 중요한 핵심이었다. 조금씩 그는 변해져 갔다. 말도 행동도 태도도 마음도, 조금씩 변해가는 그로 인해서 나도 조금씩 아픔이 달래져 가는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 남편도 아들도 내 글을 읽어주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도저히 다 알 수 없었던 그때의 나, 그리고 그, 우리 가족들. 가장인, 남편인, 아버지인 그가 내 쓰린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그 가늠. 그 가늠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가 브런치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언제 어느 순간에 그 과거 앞에서 나는 절규하듯이 울부짖었을지도 모른다. 곪아 터져서 어느 날, 어떻게, 얼만큼 또 헤매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나는 지난 4년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4년에서 내가 얻은 교훈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년의 감옥살이에서 이제 자유를 얻었다. 치유의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올망졸망한 마음에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가장 감사한 점이다. 이제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글로 쓸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