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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24. 2024

외국인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16화)

올해 3월부터 나와 남편, 우리 사람의 아침 루틴은 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라인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안무 연습을 위한 팝송 익히기로 하루를 시작하다가 현대미술사에 빠지면서는 미술사 관련 유튜브 영상 시청, 작가와 작품 관련 유튜브 영상 시청을 하면서 그러다가 가곡에 빠지면서는 가곡 듣기와 따라 부르기로 또 그러다가 라틴댄스에 빠지면서는 바차타 기초 스텝을 익히면서 또 그러다가 엘비스의 노래에 빠지면서는 엘비스의 노래로 그렇게 내가 몰입하고 빠지는 것에 따라 우리 두 사람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아침을 느긋하게 즐겼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다. 그때그때마다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간단하게, 준비할 것도 없이, 엊저녁에 먹고 남은 게 있으면 없으면 그냥 건널 때도 있지만, 음악도 즐기고 미술 감상도 하고 춤도 한 번 춰보고 그렇게 즐기면서 하루를 시작했었다.


지난 한 달 전부터는 영어 공부에 몰입하면서부터는 영어 듣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듣고 따라 하고 그렇게 시작한다. 일어나면서부터 잠자기 전까지 영어가 들리는 환경에 있게 되다 보니 어느새 발음도 좋아지고 프리토킹수업도 적응이 되면서 스몰토크에도 재미가 붙었다. 남편과도 집에서도 차에서도 식당에서도 계속해서 영어로 묻고 답하고, 생활 속에서 우리 두 사람이 하는 말은 영어로 뭘까? 검색해서 찾고 따라 해보고 하게 되었다. 남편의 발음도 부드러워지고 긴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고 단순한 단어도 문장도 생활 속에서 꺼내게 되었다. 말문이 트였다. 부끄럽지만 남편은 내 덕분에 영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나를 자신의 영어 선생님으로 부른다. 




올해 봄부터 기차를 타고 다닌다. 40분 정도 탄다. 기차는 편안하다. 잠깐 쉬는 데에 딱이다. KTX보다도 비행기보다도 훨씬 편안하다. 다리를 내 마음대로 뻗을 수도 있고, 다리를 꼬고 앉을 수도 있고, 잠깐 동안의 잠은 피로를 풀어준다. 40분은 금방 지나간다. 


오후 2시가 지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마음이 가뿐하지 못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어 수업을 오늘은 망쳤다. 좀 헤매었다. 도통 뇌가동이 되지 않았다. 몰입이 잘 안 되었다. 지난주와 달리 나는 오늘은 형편없었다. 따라가기 바빴다. 


통로석 내 자리 2호 26에 다다랐을 때 벌써 창가석에는 누가 앉아 있었다. 외국인이었다. 머리를 묶은 젊은 아가씨였다. 편안하게 입은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 다리 밑에는 큰 배낭과 또 다른 가방, 크지 않은 빵 몇 개가 봉지에 있고,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점심인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다닌 지 꽤 되었는데 내 옆자리에 외국인이 앉은 것은 처음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오늘 영어 수업 망쳤는데! 왠지 이 상황이 내게는 기회인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녀의 귀에 이어폰이 있었다. 그녀가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무심한 얼굴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실례가 되었다! 이런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도 외국인이 오늘 처음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말을 걸고 싶었다. 이런 말을 영어로 해야 하는데 도대체가 영어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곤욕스러웠다. 그리고 답답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러는 나를 그녀는 물끄러미 쳐다봐주었다. 뭐지? 그런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우선은

"For the first time, 어, 어, -?"

하고 말문을 열었다. 나를 보더니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시간을 묻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Time?"

아닌데, 몇 시인지 묻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요즘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도 있으니까.

"Can you speak korean?"

그녀는 영어와 잉어만 할 줄 안다고 했다. (잉어는 이스라엘잉어의 축약이다.) 한국말은 전혀 못 한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나를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다.

그녀는 번역앱을 켜는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필요한 게 있나요? 그런 뜻이었다. 

"I don't need. I want to talk in english with you. every day morning I practice english speaking."

그녀는 나의 말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살짝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주었다.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영어로 맞장구를 쳤다. 내가 아침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것 같았다. 


옳은 문장은 이러하다. ㅠ

  I practice speaking English every morning  


그렇게 30분 동안 스몰토크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내게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32년 되었다고 하니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내게 가족사진을 보여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울 가족 4명 단톡방에 있는, 지난달에 올린 가족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지난 9월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을 가리키며 남편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에게 가족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녀의 가족은 4명, 자매였다. 그녀는 23세, 여동생은 17세, 미디엄 길이에 부드러운 펌을 하고 앞가르마를 한 소녀였는데 군복 차림도 있었고, 평상복을 입은 모습도 있었다. 아빠, 엄마, 자매가 찍은 사진은 웃음으로 넘쳤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키아누 리브스처럼 잘 생겼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눈이 블루라고 하면서 남자 친구와 찍은 다양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주 잘 생겼다. 그녀도 예뻐서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엄마와 닮았다고 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서울이었는데 서울에서 오륙도, 부산까지 하이킹과 걷기를 했는 사진까지도 보여주었다. 몽고에서 한국으로 왔고, 캄보디아, 태국, 인도, 일본에 여행을 했다고 한다. 나는 캄보디아에 가족들과 예전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리고 앙코르와트 유적지, 뷰를 이야기하면서 사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사원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하이킹하면서 찍은 우리나라 사원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사진에는 우리나라의 들꽃도 있었다. 사진을 무척 잘 찍었다. 

내가 오륙도에는 못 가봤다고 하니, 그녀는 여기에 사는데 어떻게 못 가봤냐고 했다.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나보다도 더 깊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좋아해 준다고 했다. 


서로의 취미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나는 필라테스와 라틴라인댄스, 삼바, 바차타, 살사 이야기를 하니 그녀는 요가가 취미라고 했었다. 그런데 하이킹을 오랫동안 하고 있어서 지금은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었다. 그녀는 날씬하고 예뻤다. 젊은 아가씨였지만 피부가 하얗고 보습도 잘 되어 있었다. 고왔다. 


서울에서 뭘 할 거냐고 물으니 하이킹과 걷기를 할 거라고 했다. 얼마나 머물 거냐? 1주일 정도냐고 물으니 7개월 정도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7개월 동안이나 있다니, 그녀는 직업이 없었고, 학생도 아니었고, 꿈도 지금은 없다고 했다. 여행을 마음껏 하고 꿈이 정해지면 미국에 가서 살 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주 친절하고 마음씨가 사려 깊다고 했다. 이렇게 30분을 웃으면서 재미있게 신나게 보냈다. 역에 내릴 때가 되어서 아쉬웠다. 다음에 또 만나면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니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함께 웃는 사진을 찍었다. 한번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30분의 만남으로 괜히 감정이 노출되는 모습으로 보일까 봐 앞만 보고 내렸다. 뒤가 간지러웠다.  




집에 도착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오늘 멋진 일 있었어요."라고 자랑을 했다. 남편은 대단하다. 외국인과 30분이나 말을 했다니,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계속해서 영어 말하기, 듣기 연습을 했다. 내년 이때쯤에는 외국인과 스몰토크를 천연덕스럽게 잘하게 될 기대를 하면서, 한국어처럼 영어를 잘하게 될 기대를 하면서 그리고 다음 주 영어 시간에는 선생님을 놀라게 할 정도로 수업을 잘하길 기대하면서. 한 번의 스몰토크였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더 열성이 되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다음 주에 수업하러 가서 외국인과 대화를 했다고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할까?" 

이번주 프리토킹 숙제가 자신의 재능, 적성, 소질에 관한 말하기인데, 그럼 다음 주에 가서 용기를 낸 스몰토크에 대해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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