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친구한테 하나 가르쳐주면 막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빨개졌다.
그의 나이는 41세, 미혼, 동안이다. 요즘에는 자기 관리를 잘하면 또, 한 10살 정도는 어려 보이니까 그의 실제 나이보다는 많이 어려 보였다. 그녀 눈에는 30~31세 정도로 보였다.
41세는 중년 남자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능글능글함은 없지만 그에게는 미묘한 흐름이 있었는데, 살짝 순간적으로 보이는 앳된 소년미가 있다.
언뜻 스치는 소년미에,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통통 튀는 발랄한 장난기가 서린 유머가 왠지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매서운 눈매를 잘 날린 것 같다. 만나보니 눈매는 따뜻하고 그윽했다. 그녀는 아이컨택을 하는 대화방식을 하는 여자여서 그와의 아이컨택을 피하지 않았다. 그 또한 아이컨택을 하는 대화방식의 남자였다.
오늘도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또 얼마나 배울까? 발걸음에 설렘을 얹었다. 산뜻한 봄바람 ~ 살랑거린다.
영어 과외를 하러 가는 그녀, 그녀는 학생을 가르쳤었던 논술강사였지만 자신이 과외를 받아 본 적은 없다. 일대일 과외를 받아 보니, 진심으로 문화센터에서 영어를 배울 때보다는 영어가 빠르게 느는 것 같다. 그와 매일 영어로 카톡을 하니, 영작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왜? 일대일 과외를 하면 좋은지 알 수가 있었다. 오로지 영어를 빨리 습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과외, 그녀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여자였다. 배운다는 것, 설렘을 주는, 바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첫사랑의 설렘처럼 그녀에게는 배움이 풋사과를 먹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농익은 사과를 먹을 수 있을 거야!
현관 앞,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옷에 어울리는 신발을 골랐다. 활짝 핀 개나리꽃처럼 노란 하이웨스트 와이드 팬츠, 부챗살처럼 차르륵 흐르는 바지가 여성미를 돋보이게 한다. 베이지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이너로 하고 세트인 재킷을 걸쳤다. 시스루블랙스타킹 양말을 신고, 진한 그레이 옥스퍼드화를 신으니 착장이 괜찮은 것 같다. 허리까지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은 풍성하게 출렁이듯 보기 좋다. 관리가 잘 된 머릿결이다. 오늘은 봄이니까, 좀 더 상큼하고 싶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팔자 곡선을 만드는 블랙 리본을 귀 뒤쪽으로 꽂았다. 가느다란 큰 리본을 포인트로 하니 그녀가 원하는 봄 느낌이 연출되었다. 상큼하다. 그녀는 옷을 즐긴다. 그녀의 하루 기분을 돋워주어 그녀는 생기 있게, 잘 짜인 하루 일정을 빈틈없이 해낼 수 있었다. 옷은 그녀에게는 무기였다.
발걸음이 가벼운 만큼 영어 과외 수업을 기대했다. 그런데 첫 수업을 받으면서 그녀가 기대한 것과는 달리 과외 수업의 질은 형편없었다. 그가 수업 준비를 안 하고 퉁 치듯 그가 갖고 있는 능력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흘러갔다. 뭐지?
과외비에 맞지 않는 엉성한 수업 내용, 남자 냄새를 풍기는 듯한 톤, 당연히 남자인데, 따뜻한 저음으로 부드러운 바람결처럼 날리는 듯한 말솜씨, 약간 도취될 수도 있는 듯한.
일대일 영어 과외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걸까? 당장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 아닌 성인이라서 좀 여유 있게 가는 걸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뭐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마음속으로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뭐, 수업 준비는 엉성한데, 그래도 수업 안에서 뭔가가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하는 영어과외수업.
2시간 과외수업을 받아 본 후에, 단 한 번의 수업에서 쉽게 마음의 결정을 한 것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한 달 과외비가 끝나면 다음 달은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든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에 끝내야지, 결정도 쉽게 되지 않는 미묘한 흐름의 영어과외 수업. 현장 경험이 풍부한 그녀의 강사 시절을 생각해 보면, 또 그의 이력을 생각해 볼 때, 그에게 기회를 좀 더 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고. 일단은 한 달 과외비를 이체했기 때문에 머뭇거리면서 그녀는 한 달의 4회 수업을 채워나갔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일대일 과외수업이 잘 짜인 플랜처럼 레슨의 질이 좋아서 그녀의 영어가 좋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대일 과외비를 이체한 만큼 그녀가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서, 해갖고 가서, 그녀가 공부한 영작 자료를 갖고 가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이어서, 그녀의 의지적인 노력 덕분에 느는 것 같았다. 수업에서 그는 그녀가 공부해 온 것을 체크해 주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이런 실마리가 있으면 잘 되는 걸까? 점차 다음 달 수업으로 이어져 가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
4월, 마지막 영어 과외 수업.
오늘은 프리토킹을 하는 날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영국 억양으로 하는 그의 발음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녀가 받은 영어 교육은 미국식 영어였다. 그녀가 영국 유학을 한 그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영국 억양의 영어를 배우고 싶었고, 그녀의 서툰 영어 발음을 교정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는데, 준비를 잘하여서 어학연수, 유학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이 영어과외수업이 상당히 비중 있는 그녀의 일정이었다. 그녀의 원대한 꿈의 계획과는 달리 현재 그녀의 실력은 초급단계였다. 그래서 더욱더 이 과외 수업을 기대했고, 그녀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리스닝과 스피킹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가 내어준 과제로, 강제가 아닌 스스로 영작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팝송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영국식 발음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특히 에드 시런의 팝송을 주로 들었다. 에드 시런은 영국 가수이고 그녀는 에드 시런의 가락과 노랫말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영화도 영국 영화를 선택하여서 보고, 카톡으로 그와 영어 영작도 매일 열심히 보내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파도에 밀려가는 물거품처럼 헛수고가 돼 버렸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그와 아이컨택을 하면서 프리토킹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고요?
여긴 카페이거든요. 음악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소리, 여러 가지 잡다한 소리 그리고 그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거리로 인해 또 낮은 톤의 그의 목소리,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그의 영국식 발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속상했다. 수업을 또 공쳤구나!
"화장실에 갔다 올게요."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보이는 여자 대 여자끼리 하는 영어과외수업. 나란히 붙어 앉아서 교재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한다. 지나가면서 언뜻 들어보니, 재미있게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또렷하게 들리는 영어 발음.
순간, 그녀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여자를 선택했다면 나도 저렇게 공부하고 있을 텐데.
남자를 선택하여서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다. 나란히 앉으면 수업이 더 편할 텐데. 남자라서 멀찍이 앉아서 그 거리감 때문에라도 영어 발음이 들리지 않는다. 오늘 수업이 그녀가 1주일 내내 노력한 것과는 달리 성과가 없어서 그녀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화장실을 갔다 온 그녀가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가 어제 보낸 카톡 내용에서 그가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어제 카톡에서요. I am walking for Latin dance는 이렇게 말해야 돼요."
"I'm on my way to dance class."
"나는 댄스 하러 가고 있어요. 할 때는 I'm on my way to dance class.라고 해야 돼요."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내가 사용한 영작을 수정해 주었을 때 그녀는 그런가 보다, 그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때 불쑥, 그가 꺼낸 말은
"여자친구한테 하나 가르쳐주면 막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그녀는 그와 나이차가 아주 많은 과외학생인데, 이런 말은 뭐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아연실색하고 있을 때 그가 다음 달 수업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2주째에는 중국에 며칠 갔다 온다고 하면서 영어와 미술 수업 보강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그녀는 셋째 주에는 베트남 여행을 가는 일정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 달에는 일정이 아주 많아서 미술 보강은 할 수가 없다. 2회 수업으로 그냥 하자고 했더니, 그는 4회가 한 달 일정이라고 못 박는다. 굳이 미술 수업을 보강까지 해가면서 받고 싶지 않다. 왠지 그가 날라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