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남자가 아니야? 남자로 안 보이는 거야?
남자로 보이는 것과 남자로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뭘까? 그에게 물어봐야겠다. - 그것에 대해서 그는 함묵했다. 혼자 일기를 쓴 거로. 그가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다. 그 느낌을 알고 싶었다. 호기심, 그녀의 호기심, 점점 증폭되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모든 일의 발단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2025년 5월 4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 ~ 10시 30분
<○○○ 선생님>
처음에는 애나 영어 선생님처럼 나의 개인과외 선생님으로 가볍게 카톡을 시작했다. 카톡 내용이 애나 선생님보다는 더 디테일하고 사려 깊었다. 내 문장에 어울리는 문장을 주어서 이렇게 영어를 배우는 가보다. 그랬다. 어느 틈에 편하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것 같았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해서 나이 차이 즉, 갭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목요일 저녁,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카톡 대화라도 얼핏 사귀는 사이의 대화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루를 소통한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순간 스치고 지나간 다음날이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수업, 막바지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농담으로 받아넘길 수도 있는 말인데, 유연한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여자친구한테 하나 고쳐주면 얼굴 빨개지는 것처럼 빨개졌다고 해서(그가 농담으로 그렇게 비유한 말이다. 그래도) - 난, 무슨 말이지 싶었다. 플러팅 했어요? 이것도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플러팅 : 일전에 카톡 해서 fabulous 배울 때 배운 단어다. 이후에, 나도 신세계백화점에서 은팔찌 살 때 귀엽고 사랑스러운 20대 아가씨들과 즐겁게 웃고 놀고 난 후에 그에게 플러팅 단어를 넣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영작으로 보냈다.
그래서 플러팅의 뜻을 대충은 알았다. 그런데 그가 나한테 플러팅 했어요? 묻는다.
나는 그를 나의 영어회화 개인과외 선생님으로, 보고, 대했는데,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그다음 주 월요일 만남에서 나눈 대화이다. 시간적 순서는 그러하다.)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이 분은 41살, 성인 남자구나, 그런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에 유학한 사람으로 미술 분야를 공부하고, 스포츠 디자이너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다. 나와 대화의 결이 맞는 사람. 나는 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흥미로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었다. 핑퐁 하듯이 그와의 대화는 늘 재미있었다. 한 번 질문을 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답변을 잘한다. 그 점이 그의 강점인데, 내게는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안정감을 주었다. 대화가 유유히 흘러가는 그 느낌,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도 막힘도 없는, 대화하면서 나는 이렇게 대화가 된다는 것이 간혹 신기했다.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그것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플러팅 했어요?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래, 이 남자는 41살 성인 남자구나.
그래, 그렇게 대하고 존중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로는 아니다. 남자로는 안 보인다?
내게 그렇게 물어서 또 한 대 맞은 듯했다.
나는 기혼여성이고, 그와 17살 나이 차이가 나는데, 내가 그를 남자로 보는 게 과연 적절한가?
이성으로 남자로 보인다는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 어떤 감정을 느껴야 남자로 보이는 걸까?
그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건 어떤 감정인가? 그에게 묻고 싶다.
또, 내가 그를 남자로 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를 남자로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를 신뢰하는데.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사실, 그런 생각은 해봤다. 마음속으로 미술을 전공한 그,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사람과 미술 전시회에 가면 나는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어떤 시각, 어떤 관점으로 그림을 볼까? 그림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줄까? 나는 많이 배운 사람이 좋다. 내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예의가 바르다. 인내심도 있다. 그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길 바란다. 꿈은 소중하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가 있다.
그에게 그녀는 핸드폰 메모란에 쓰인 그녀의 일기 내용을 보여 주었다. 그가 그녀의 일기를 읽고 있을 때, 그녀는 부끄러웠다. 그녀 내면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가 어떤 말로 그녀에게 이해를 시켜줄지 자못 궁금했다. 그녀의 호기심을 풀어줄 남자. 숨죽이며 그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지막하게 "이거는 일기를 쓴 거로."
그녀는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그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이컨택을 자신 있게 잘하는 그녀가 자꾸만 그의 눈을 아이컨택하기 어렵게 되었다. 알 수가 없었다. 그 미묘한 흐름, 이것이 과외 수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