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쓸한 등, 처져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항상 미안했었다.
어김없이 일어나게 되는 새벽 5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새벽 모닝 루틴이다. (가끔씩은 3시 또는 4시 아니면 더 빨리 일어날 때도 있다.)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신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믹스커피 1잔을 준비한다.
조금 마신다. 잠이 깨이는 기분이 든다. 필라테스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욕실로 가서 반신욕을 준비해 놓는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는다. 욕실이 따뜻해질 수 있게.
텔레비전을 킨다. 유튜브 - 10분 전신 스트레칭 체조를 준비한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천천히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한다.
다음으로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즐기는 라틴라인댄스 안무를 준비한다. 지난주에 배웠던 안무, 이번 주에 할 안무를 연습한다. 복습과 예습을 잘하는 그녀답게, 무엇을 배우든 복습과 예습을 스스로 잘하는 그녀답게. 각 곡마다 몇 번씩, 더 정확한 동작, 순서를 익히는 연습을 반복했다. 몇 곡을 그렇게 신경 써서 연습을 하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차오르기 시작했다. 땀이 나면서부터 마음속이 점차로 개운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답을 찾은 것 같다.
여느 날과 똑같은 새벽모닝루틴, 언제나 마음도 개운했었고, 머리도 개운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머리가 복잡했다. 왜? 머리가 복잡할까?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말, "여자친구한테 하나 가르쳐주면 얼굴이 빨개진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그날 그가 또 이어서 했던 말, "서로 조심하면 되죠.", "남편을 만나 볼게요." 그가 왜? 이런 수상한 말들을 나열할까? 나라는 사람에게 하기에는 과한 말들이 아닌가.
일대일로 하는 개인과외이다.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하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이면 왠지 배우자가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나이 차가 많이 난다. 나는 괜찮은데, 남편은 그가 40대인 것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내가 스타일 좋게 입고 나가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왜? 그렇게 예쁘게 입고 다녀?"
"원래 나는 예쁘게 멋지게 하고 다니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어떤 옷을 입고 나가는지, 왜 남편이 신경을 쓰고 그가 신경을 쓰는 걸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에게. 나는 한 달만 해보기로 했다고. 남편이 과외 선생님이 남자인 것에 신경을 쓴다고. 그가 하필이면 금요일에 휴무를 갑자기 잡아서, 내가 어떤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하는데에 신경을 쓴다고. 체크받는 것 같다고.
그때 그는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남편이 몇 번 그렇게 했어요?"
그녀는
"응, 두 번 정도."
그런데 그가 한 말들이 참 이상하다. "서로 조심하면 되죠." '뭘, 조심해야 되는 걸까?' '왜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 그리고 이어서 한 말, "내가 남편을 만나 볼게요. 남편, 만날게요." 왜 그가 갑자기 내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할까? 그것을 간절히 원할까? 내가 이 미술 수업과 영어 수업을 이어서 하길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왜, 내가 그에게 간절히 필요할까? 그가 한 말들이 맴돌았다.
'나는 그냥 그의 수강생들 중, 한 명인 수강생일 뿐인데.'
"에너지가 굉장히 밝으세요."
"나도 자극받아요."
"나도 요즘 운동 열심히 해요."
이거는 다 무슨 말인가? 왜, 이런 말들을 내게 쏟아내는 걸까? 내가 그에게 무슨 빈틈을 보였나? 내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 도대체 이건 뭐지? 내가 그보다 얼마나 나이가 많은데, 물론 내가 젊어 보이긴 하다. 아직 충분히 아름답고 예쁘다. 남편한테도 인정받는 미모, 아름다움, 만나는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야기 듣곤 하는 와, 하는 놀라움과 함께 진짜 동안이다, 왜 이렇게 젊어요? 비결이 뭐예요?
그녀는 15년 ~ 18년 정도까지 때로는 그 이상까지도 젊어 보일 때가 있다. 의상에 따라, 그날의 피부에 따라, 그날의 전체적인 연출에 따라 그녀는 달라 보였다. 시각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그녀의 내면세계를 읽을 수 있는 그녀의 말, 행동들, 그리고 그녀의 마인드가 젊은 감각을 갖고 있었다. 아줌마 소리는 안 듣는다. 주로 아가씨 같다는 말, 그녀를 태우는 택시 기사도 "어디까지 가세요? 아가씨."
그녀 자신도 자신이 30대라고 생각하고 산다. 마음의 나이가 그녀에게는 30대이다. 20대는 너무 젊어서 생각이 여무지 않았고, 40대는 꿈을 접었을 것 같은, 현실에 안주하는 나이인 것 같고, 30대는 아직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열정이 가득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꿈을 먹고사는 여자이다.
이젠 20대와는 달리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이,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나이를 30대로 규정했다. 그녀는 꿈이 가득하다. 이루고 싶은 그녀의 꿈이 가득하다. 그녀는 이렇게 자기 나이를 정했다. 10이라는 숫자는 합일의 숫자다. 사람은 10을 향해서 나아간다. 3과 7은 서양과 동양에서 좋아하는 숫자이다. 또 중요한 숫자로 3이 많이 거론된다. 심지어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도 3이라는 숫자를 대변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나이를 37살로 규정하고, 그녀가 30대라고 생각하고 산다.
얼마 전, 수업에서 그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나이가 많으신데, 젊어 보이세요."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냥 좀 칭찬을 하는 가보다. 늘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어서 또 그렇게 보나보다.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자료를 보고 있으니, 또 불쑥 꺼낸다.
"죄송한데요. 나이가 많으신데, 젊어 보여요."
또 그런가 보다 했다. 왜 두 번씩이나 연거푸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에 와서야 궁금하다. 그가 나를 젊은 여자로 보았던 것 같다.
뒤이어하는 말이,
"머리도 길고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청춘의 이미지, 청바지에 흰 티셔츠?"
나는 이번에는 대꾸를 했다.
"아, 전지현 같은. 그런 이미지."
그의 얼굴도, 그의 눈도 보지 않고 말을 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들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묻지 않았다. 짐짓 모른척했다.'
나는 그의 과외학생이 아니냐? 수업에서 나올 수 있는 말들이 아니어서 그녀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가 꺼낸 말들은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걸까? 그가 꺼낸 말들에 대한 의미를 알 길이 없다. 그와 나눈 영어 카톡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다.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 내용들, 그가 그렇게 말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영작으로 하는 거라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서, 영어가 금방 늘어난다. 교재에서 나온 문장들이 아니라, 내 것이니까, 쉽게 익혀진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자기 이야기가 담긴 영어 문장을 자꾸 쓰면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말하는 것이 쉽게 되겠지.
그런데 금요일 수업 전, 목요일 저녁에 그녀는 순간 스치는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런 대화는 사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루를 소통하는 그런 내용들이 아닐까?
그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풀어줘야 되겠다. 이해시켜 줘야 되겠다.
보통은 1시간 정도로 몸을 푸는데, 오늘은 벌써 3시간째 라틴라인댄스 안무 연습을 하고 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몸도 지쳐간다. 마음도 지쳐간다.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기승전결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의 착각,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까?
20여 년 전, 일이 생각났다. 그 소년이, 마지막 장면, 그 소년의 축 처진 어깨, 가로등 아래 쓸쓸히 걸어가는 뒷모습,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그녀, 차마 불러서 한 번 안아줄 수도 없었던 그 소년, 내내 마음이 아팠던 그 마지막 뒷모습이 중첩된다. 금요일에 그가 꺼낸 말들과 함께. 그녀의 마음은 점점 수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와 똑같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그때는 소년, 지금은 성인, 묘하다. 그 소년이 자라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현재 이 남자와 비슷하다. 나이, 키, 체격, 머리 모양, 발랄한 제스처, 풍기는 남자 냄새까지도.
한동안 내내 그녀의 가슴을 에이게 했었던 지난날의 장면이 선연하게 현재로 떠오른다. 모른척하면서 따갑게 대했었던 그 예전의 일들. 이번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따뜻한 온기로, 따뜻하게 해 줘야겠다. 그런 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눈에 비친, 언뜻언뜻 비치는 소년 같은 모습들, 아마 소년의 마음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까? 나를 좋은 마음으로 보는 거라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줘야겠다. 그런 생각들로 모아졌다.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특별한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아, 그에게 그렇게 말해주면 되겠다. 신뢰한다. 존중한다. 성인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 인정받는 느낌. 그것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마음의 복잡함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왕이면 영어로 말해야겠다.
"I admire you as a my English teacher." ("저는 당신을 제 영어 선생님으로 존중합니다.")
"If you want to be a friend, I trust you as a friend."
( "만약 친구가 되고 싶다면, 저는 당신을 친구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