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던 거짓말

PART Ⅱ. 기억의 앨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by 연우

말레이시아에 사는 외삼촌이 한국에 방문했다. 외삼촌은 육 남매 중 넷째로 유일한 아들이었다. 외아들이어서인지 애교와 장난기가 넘쳤고, 딸들 사이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일 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삼촌은 늘 나와 즐겁게 놀아주었다.


어느 날, 삼촌이 나를 불렀다. 나는 삼촌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삼촌은 나에게 굉장한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대신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엄청난 비밀일까. 호기심으로 가득해진 나는 삼촌에게 알려 달라고 졸랐다.


삼촌은 ‘정강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나에게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정강이에 나무 막대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더운 나라에 사는 삼촌은 다른 남매들보다 피부가 까맸고 유난히 마른 체형이었다. 삼촌이 발가락 끝을 당기고 손바닥으로 정강이 부분을 쫙 펴 보이자, 납작한 정강이뼈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짓말!”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삼촌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정말이라고 단언했다. 선명하게 솟아오른 납작한 뼈는 정말로 나무 막대기 같았다.


삼촌은 그 나무 막대를 만져보라고까지 했다. 나는 고사리손으로 삼촌의 정강이뼈를 꾹 눌러보았는데, 너무 딱딱하고 판판했다. 이어서 삼촌은 무릎뼈도 만져보라고 했다.


“뼈는 원래 이렇게 울퉁불퉁하거든. 근데 여기에는 막대기가 들어있어서 이런 거야.”


나는 삼촌의 정강이뼈를 눌러대며 거듭 물었다.


“정말 나무 막대기야? 어쩌다 그런 거야? 진짜야?”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유는 삼촌만의 엄청난 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외할머니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빠의 서재로 달려갔다. 바닥에 엎드려 일하는 아빠에게 일어나보라고 닦달했다. 글을 쓰는 중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다음 날까지 삼촌의 비밀을 마음속에 간직해야만 했다. 밤새 나무 막대기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를 아빠에게 전했다. 이건 삼촌과의 비밀이니까 아빠만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 말에 귀 기울이던 아빠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아빠도 비밀이 하나 있어.”

“뭔데?”


아빠는 다리를 쫙 펴 보였다.


“아빠 종아리에도 나무 막대기가 들어있어.”


내 시선은 아빠의 길고 가는 다리에 고정되었다. 살집이 없어 더욱 도드라진 종아리 앞면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뼈가 피부 위로 선명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아빠의 다리를 꾹꾹 눌러보았다. 외삼촌의 정강이뼈와 똑같은, 그 단단하고 낯선 촉감이었다.


“어떻게 아빠도 이게 있어?!”


다리를 쫙 펴 보았지만, 내 다리에는 아무것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나무 막대기는커녕 연필조차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아빠는 마치 비밀을 공유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나무 막대기는 특별한 어른이 되면 생기는 마법 지팡이다. 지금은 네가 너무 어려서 없지만 언젠가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


마법 지팡이! 그날 이후 나는 특별한 어른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이 거짓말의 환상은 어른이 되기도 아주 한참 전인, 초등학교 때 깨져버렸다. 키가 크면서 내 다리에서도 정강이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삼촌에게서 시작된 거짓말을, 내 동심을 지키기 위해 장난처럼 이어주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말이다. 그 거짓말은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따뜻한 이야기였다. 그 시절 나는 나무 막대기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아이였다. 그건 아주 짧으면서도 긴,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아빠와 삼촌의 장난을 떠올리면 마음속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몸속에 마법 지팡이가 자라나는 특별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며, 잠시나마 마법 같은 세계에 살 수 있어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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