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퍼즐, 스도쿠와 가로세로 낱말 풀이

PART Ⅱ. 기억의 앨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by 연우

나는 매일 아침 문 앞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좋아했다. 얇은 종이의 촉감과 신문 특유의 잉크 냄새도 매력적이었지만, 정말로 좋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그곳에서는 우리 가족의 승부가 펼쳐졌다. 아빠가 신문 마지막 페이지만 떼어내어 세 부를 복사해, 엄마랑 내게 따끈한 복사본을 나눠주었다. 다 같이 서재 방바닥에 나란히 엎드리면 아빠가 “시작!”이라고 외쳤다. 오늘의 승부란 바로 스도쿠와 가로세로 낱말 풀이였다.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이며 집중했다.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아빠의 미간은 점점 좁아졌고, 엄마는 이따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의 종이를 슬쩍 훔쳐보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보지 말라며 한쪽 팔로 가리기도 했다. 우승 상금이나 경품은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빠도 엄마도 나도 작은 승부에 목숨 거는 순수한 아이가 되었다.


스도쿠의 승자는 매번 달랐다. 하지만 낱말 풀이에서는 아빠가 압도적인 어휘력으로 거의 매번 1등을 차지했다. 아빠가 “끝!”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면, 엄마와 나는 연필을 내려놓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낱말 풀이는 불공정한 경기야. 아빠에게는 페널티가 필요해”라고 항의하면 아빠는 “억울하면 너도 작가 해라”라며 낄낄댔다.


엄마와 아빠를 꺾고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소박한 야망을 품은 나는, 학교 쉬는 시간에 스도쿠나 낱말 풀이를 하곤 했다. 반 친구들은 십 대가 무슨 노인네 같다며 별난 취미를 가졌다고 놀렸다. 하지만 단순한 퍼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아빠와 엄마를 꺾고 “끝!”이라고 외치며 승리하는 짜릿한 순간만을 향한 훈련이었다.


그런 소소한 경쟁이 일상이던 시절은 서서히 지나갔다. 스마트폰이 일상에 보급되면서부터 종이 신문은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 현관의 신문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폐지 분리수거가 조금은 줄어들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신문이 일상에서 자취를 감춘 지도 한참이 지났다. 어느 추석 명절이었다. 아빠는 책들로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 먼지가 백혈병 환자에게는 위험하니, 정리라도 좀 하라고 잔소리하려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는 돋보기를 쓰고 펜을 손에 꼭 쥔 채, 마치 외부 세계를 잊은 사람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완전히 몰입해 있어서인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책상 위에는 낱말 풀이 책이 펼쳐져 있었다. 아빠의 좁혀진 미간, 돋보기 너머로 빛나는 눈빛, 빈 네모 칸들에 시간의 먼지 아래 묻혀 있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십여 년 전의 장면이 투명 필름처럼 아빠의 모습 위로 겹쳐 보였다.


옹기종기 방바닥에 엎드린 세 사람, 갓 복사된 종이에서 느껴지던 온기, 손끝으로 전달되던 연필심의 미세한 감촉, 숫자와 단어를 따라가던 시선, 집중할 때마다 좁아지던 아빠의 미간, 엄마가 낱말 칸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중얼거리던 목소리, 그리고 고요하던 그 집중의 순간까지.


그때였다. 아빠가 고개를 들었다. 깊게 팬 미간에 희끗희끗한 눈썹, 축 처진 눈가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했다. “왔냐?” 돋보기를 벗으며 아빠가 물었다. 내가 나머지 낱말을 채워 넣으라 재촉했지만, 아빠는 머리가 아프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노화와 오랜 백혈병 투병으로 집중력이 저하된 탓이었다.


환자 방이 이게 뭐냐며 책 먼지가 심각하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어쩌면 자그맣고도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거대한 퍼즐 같다고. 비록 이제는 함께 퍼즐을 풀 수 없을지라도 서재 방바닥에 셋이 엎드려 승부를 겨루던 그날의 추억은, 삶이라는 퍼즐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소중한 기억의 조각으로 남으리라고. 언젠가 엄마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날이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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