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기억의 마지막 증인이 되는 일

PART Ⅴ. 시간의 흔적: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에서

by 연우

엄마는 어린 나를 자주 외갓집에 데려갔다. 부모님이 함께 외출하면 외동인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갓집은 서울에 있었지만, 언덕 꼭대기의 단층 주택이라 그런지 마치 시골집을 연상시켰다. 빨간 벽돌집 옥상에는 외할아버지가 키우는 수세미, 오이, 호박, 고추 등 갖가지 채소들로 가득했다. 앞마당에는 해바라기, 진달래, 깨꽃 등 알록달록한 꽃들도 피어 있었다. 외갓집에 자주 가면서 동네 아이들과도 친해졌고, ‘땅따먹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도 함께했다. 외갓집 골목에서의 추억은 형제자매 없이 자란 내게 혼자가 아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홉 살의 어느 날, 외할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외가는 기독교였고, 친가는 천주교였지만, 엄마와 아빠는 종교가 없었다. 무교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교회는 낯설면서도 재미있는 곳이었다. 또래 친구들도 많았고, 어른들도 무척 친절했다. 점심으로 나왔던 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기도 시간이었다.


목사님의 “기도하세요”라는 말이 떨어지면, 일렬로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나는 눈을 꽉 감고 손을 모았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친구들이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책을 단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천재가 되게 해달라고도 빌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소원들이 불꽃놀이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기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다 빌지 못한 소원들이 끝없이 떠올랐다.


하루는 교회에서 ‘영생’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몸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영혼은 영원한 나라에서 이어진다는 뜻이었다. 아홉 살의 나는 죽음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죽음이 어쩐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함께했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외갓집에서 돌아온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천국이 뭔지 알아?”

“알지.”

“아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먼저 죽지?”


아빠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그렇겠지.”

“착한 일 많이 하면 천국 가고, 나쁜 일 많이 하면 지옥 간대. 아빠는 천국 가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모른다.”

“왜 몰라? 교회에서는 죽으면 천국 간다고 했는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천국에서는 우리 셋이 다 만날 수 있댔어.”


나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야.”


아빠는 시선을 멀리 던지며 나른하게 말했다.


“그럼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아무렇게도 되지 않아.”


아빠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나를 잊어버리는 거야?”

“잊어버릴 것도 없지. 죽으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거든.”


상상 속, 햇빛이 비치는 따스한 천국의 풍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와 아빠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에 한없이 깊은 슬픔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도? 나도 죽으면 아빠랑 엄마를 잊어버려? 우리가 가족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점점 목이 메어왔다. 목구멍이 바닷물로 꽉 들어찬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아빠의 대답은 여전히 단호했다. 나는 울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태세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럼 천국이랑 지옥은 뭔데?”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아빠도 알 수 없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하지만 죽으면 움직일 수도, 생각도 할 수 없어.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야.”


아빠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이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기대했던 대답을 듣지 못해 시무룩해진 나는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죽으면 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지?”


울상을 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내게, 엄마는 아빠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물어보았다.


“아빠는 죽으면 끝이래. 우리가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진대. 서로 기억도 못 한대. 엄마가 나를 낳은 것도 기억 못 할 거래.”


나는 울먹거리며 일러바치듯이 말했다. 마치 아빠가 틀렸다는 듯이, 마치 아빠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듯이, 마치 아빠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아빠 말이 맞아.”


엄마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요리에만 집중했다. 엄마만큼은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엄마는 아빠가 맞다고만 해? 아빠가 틀릴 수도 있잖아. 엄마 생각은 어떤데? 왜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건데? 엄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 격해지는 나의 질문에도 엄마는 그저 “아빠 말이 맞아”라는 대답으로만 일관할 뿐이었다.


그날 밤에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아도 자꾸만 죽으면 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표 피자 치즈 토스트나 아빠가 태워주는 비행기 놀이가 기억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내 세상이 유리구슬로 되어 있다면, 그 유리구슬이 형체도 없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 후로도 죽음에 대한 불안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이것도 언젠가 잊어버릴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달콤한 젤리를 먹을 때도 신나는 미끄럼틀을 탈 때도 그 생각은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아홉 살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도 슬프지가 않았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하고 계셨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죽음은 생각보다 덤덤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장례식장에 도착해, 영정 사진 속 할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차피 돌아가실 거였는데. 나이도 많고, 위암으로 오래 앓으셨으니 오히려 편안해지신 걸 텐데. 머리로는 온갖 이유를 대며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되뇌었지만 소용없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시절 막연하게만 품고 있던 ‘죽으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라는 두려움을, 마침내 현실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깨꽃 끝에 꿀이 있다며 꽃을 따 건네주던 할아버지의 손, 옥상에서 호스를 들고 식물에 물을 주던 뒷모습—추억의 풍경을 증언할 사람이 이제는 나 혼자 남았다는 사실. 훗날 나마저 사라지면, 세상에서 그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 그것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거스를 수 없는 슬픈 진리였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로도 죽음은 계속 찾아왔다. 죽음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이었다. 열일곱 살에는 사촌언니가 한창 꽃필 나이인 스물여섯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다섯 살에는 16년을 함께한 썰렁이를 떠나보냈다. 5년 전에는 친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3년 전에는 외삼촌이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바로 그다음 해에는 외할머니마저 급작스럽게 세상을 등지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각이라는 두려움에 홀로 선, 마지막 기억의 증인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강아지뿐 아니라 고양이, 토끼, 거북이, 금붕어, 새, 심지어 꽃이나 다육식물까지—생명이 있는 어떤 것도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함께했던 존재의 온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마지막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기억들이 내 안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것을 더는 바라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 말이 옳았다. 하지만 반만 옳았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하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외할아버지가 깨꽃을 따 건네주던 손, 썰렁이가 이불 속에 파묻혀 웅크려 자던 모습은 내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죽음이 끝이라면 기억은 그 끝을 넘어서려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마지막 증인이 되어 사라진 세계를 혼자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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