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궤변론자 ④ 방랑자 선언

by 연우

엄마, 아빠, 나 셋이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디스토피아 영화 《다이버전트》를 보는 도중이었다. 엄마가 대뜸 물었다.


“너는 어떤 분파에 속할 것 같아?”


영화에서는 질서와 평화 유지를 위해 테스트에 따라 사람을 5개의 분파(Factions)로 분류했다. 핏줄보다 분파가 중요하기에, 개인은 테스트 결과에 따라 평생을 정해진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야 했다. 나는 고민하다 대답했다.


“글쎄. 아무래도 에러다이트? 엄마는? 어디 같아?”

“엄마는 말이야. 애브네게이션이 확실해.”


에러다이트는 학문과 연구를 중시하는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집단이었다. 애브네게이션은 이타성과 봉사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정치와 행정을 담당했다.


“엄마랑 찰떡이네!”

“캔더는 어때?”


캔더는 사법계에 종사하는 자들로 정직과 질서를 추구했다. 화면 속 캔더 분파의 사람들은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캔더일 수도…. 근데, 돈트리스는 절대 아냐.”


돈트리스는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집단이었다.


“맞아. 엄마도!”


엄마와 내가 수다를 주고받는 동안 오직 아빠만이 침묵을 지키며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빠는? 에러다이트 같은데?”


내 의견에 엄마가 말을 보탰다.


“아빠는 보기보다 학자 유형은 아니야. 애머티일 걸?”


애머티는 행복을 추구하는 다정하고 화목한 분파로 농업을 담당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 대한 분석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빠는 갑자기 리모컨으로 영화를 일시 정지시켰다.


“나는 다섯 개 다 아니다.”


느리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럼?”

“그야말로 무분파자인 셈이지.”


테스트에서 다섯 분파 어디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받거나, 선택한 분파에서 적응하지 못해 추방당한 사람은 ‘무분파자’로 분류된다. 무분파자는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자들로,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도시 변두리를 떠돌며 살아야만 했다.


“무분파자라고? 그건 그냥 낙오자잖아.”


나는 놀라 다소 직설적으로 말했다.


“맞아.”


나는 아빠 쪽으로 허리를 틀어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빠는 글도 열심히 쓰고 마감도 항상 잘 지키잖아.”


엄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화 안에서 무분파자는 차악도 아닌 최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만약 저 세계에서처럼 평생을 정해진 역할로만 살아야 한다면, 어디에도 속하기 싫다. 차라리 자유로운 방랑자가 되련다. 그게 낙오자라 할지라도.”


아빠의 말과 현실은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의 억지처럼 들렸다. 선산처럼 든든하게만 느껴지던 아빠가 갑자기 “나는 사회에 속하기 싫어”라고 말하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했다. 자조 섞인 엉뚱함에 나는 킥킥댔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마치 구제 불능이라는 듯 눈으로 흘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니 아빠는 원래부터 답이 없었어.”


영화는 다시 재생되었다. 나는 아빠의 말을 입안에서 몇 번이고 굴려보았다.


자유로운 방랑자로 살련다

자유로운…


사회적으로 강요된 틀 속에 갇혀 사는 대신, 자유로운 방랑자가 되겠다는 그 비현실적인 선언이 순간 이상하고도 멋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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