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Ⅳ. 삶의 난제: 아빠의 방정식
일이 잘 안 풀리던 시기가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런 순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연이은 좌절 앞에서 자신감도 자존감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내 삶이 마치 흑백 무성 영화처럼 보였다. 무채색의 세계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불안은 기어코 내 인생과 나를 분리해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내 인생에서 점점 멀어져가고만 있었다.
나는 미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새 자동차 바퀴에 막걸리를 뿌린다거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해 자면 안 된다는 미신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이 무너지고 실패가 연속되어 절벽 앞에 내몰리면, 이성적인 판단력은 흐려져 버린다.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진다. 슬프게도 나도 그랬다.
그런 와중에 회사 동료가 자기 이름을 벌써 두 번이나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사주와 이름의 관계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사주팔자, 음양오행, 이름과 사주의 궁합까지 빠짐없이 찾아본 결과는 충격이었다. 이름의 한자가 음양의 균형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는 거였다. 단번에 개명하기로 마음먹은 것과는 반대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30년 넘게 불려온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면, 내가 더 내가 아니게 될 것만 같았다. 그건 또 어딘지 무서웠다.
묘책은 금방 떠올랐다. 한글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꾸는 것이었다. 한자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같은 발음으로 음양오행과 사주에 딱 맞는 글자를 찾아 조합하면 그만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나는 이전의 나와는 작별하면서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연우가 아니게 되는 동시에 여전히 연우인 셈이였다. 엉킨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듯했다. 아직 이름을 바꾸지도 않았는데 상상만으로도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연우’라는 이름의 껍데기는 그대로 둔 채 운명의 DNA만을 바꾸어 놓을 비법이었다.
“나 이름 바꾸려고.”
부모님 집에 방문한 어느 날 저녁, 나는 대뜸 말을 꺼냈다. 그 한 마디에 부모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밤새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음양오행의 불균형과 사주팔자의 충돌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한자만 바꾸는 거니까 발음은 똑같다고 강조하며 말을 마치자, 엄마는 “네 이름의 뜻이 얼마나 아름다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네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고 난 뒤까지도, 우리는 네 이름을 짓지 못했단다.”
침묵을 깬 아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깊었다.
“네가 태어나서 집에 온 그날 밤, 엄마와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작명 사전을 뒤적였지.”
아빠는 말을 이어나갔다.
“온갖 글자를 종이에 적어보고, 입으로 소리 내어보고, 불러 보기도 했어. 어떤 이름이 너와 가장 잘 어울리는지 찾아내려고.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귓속말해주듯 연우라는 이름이 들려왔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알았지. 이 이름이 바로 너라는 것을.”
나는 숨을 죽이고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글자에 혼을 불어넣을 한자를 찾아주신 분은 네 친할아버지였다.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거든.”
娟宇.
예쁠 연에 집 우.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예쁜 집’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이 한자를 고르신 데는 훨씬 깊은 뜻이 있었다. 우주는 한자로 집 우(宇)에 집 주(宙)자를 쓰지만, 이는 단순히 집을 의미하지 않았다. 지붕이라는 뜻의 우(宇)는 모든 공간, 즉 세계의 구조라는 의미로 확장되었고, ‘오래되다’라는 뜻의 주(宙)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그래서 옛날 동양에서 우주란 시간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적인 개념이었다. 아빠는 ‘연(娟)’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내 이름에는 부모님과 친할아버지의 사랑이 오롯이 깃들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지혜가 담긴 선물이자, 첫 아이를 맞이하는 부모님의 설렘이 깃든 축복이기도 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일이 안 풀리는 원인을 이름으로 돌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품고, 나만의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며 살아가라는 깊은 뜻을 한순간에 내던지려 했던 거였다. 인생의 불균형은 글자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안에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宇’를 그려보았다. 마치 작은 지붕 아래 세상이 들어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이름을 바꾸려던 마음을 접었다. 내 안에 아름다운 우주가 있다는 것,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서도 의미를 찾는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물론 여전히 일은 꼬이기도 했고 실패는 또 찾아오기도 했다. 뜻대로 되는 날보다 되지 않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캄캄한 천장에다 내 이름의 한자를 그려보곤 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