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세계에서 동사의 세계로

PART Ⅳ. 삶의 난제: 아빠의 방정식

by 연우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새벽까지 철학 서적을 읽고, 공인 영어시험과 입학시험, 면접을 준비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토익, 텝스, 한자 급수, 학점, 장학금, 심지어 체중까지—숫자로 증명되는 이 모든 성취가 결국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다. 새벽까지 불을 밝히며 공부하던 그 책상에 앉아 있어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손때 묻은 철학 전공 서적들도 두꺼운 종이 뭉치로만 느껴졌다. 귓가에 맴돌던 합격 축하 소리도 점차 희미해졌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도 잠시 허무함이 밀려왔다. 마치 오랜 시간 오르던 계단의 마지막 칸에 다다랐는데, 정작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순간처럼 말이다.


어느 새벽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빠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꿈이 뭐냐?”


아빠는 갑자기 왜 꿈 타령을 하는 걸까. 합격 통보를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지금까지 올라온 이 계단이 안 보이는 걸까.


“곧 대학원에 입학하니까 석사 논문을 잘 써서 학위를 따야겠지.”

“석사 졸업은 꿈이라 볼 수 없지 않냐.”


이제 겨우 합격했는데 뭘. 대학원 다니면서 생각해 볼게. 지금 당장은 뭐가 될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게 사실이었고, 그걸로 충분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꿈은 뭐냐고.”


나는 순간 울컥했다. 아니, 지금까지 나는 할 일을 했잖아. 대학원에 합격했잖아. 그게 왜 충분하지 않은데? 하지만 아빠의 질문보다는, 사실 그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아빠는 내 태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빠의 꿈은 뭔지 아냐?”

“작가잖아. 이미 꿈을 이뤘잖아.”


그 대답에 아빠는 받아쳤다.


“꿈은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야.”

“그럼 뭔데?”


나는 쏘아붙였다.


“아빠의 꿈은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며 사는 거야.”

“그건 또 뭐래.”


대단한 대답을 기대한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빠졌다.


“꿈이 없다면 일상 속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 봐라.”


경이로움이라니. 그건 마치 북극의 오로라나, 그랜드캐니언의 절경을 바라볼 때나, 에베레스트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나 드는 감정 아닌가? 경이로움이 뭐, 밥 먹다가 생기나? 게다가 일상 속 경이로움이라니. 그건 마치 뜨거운 얼음처럼 모순된 말의 조합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아르바이트하다가도,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아빠의 말은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일상에서 어떻게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책들도 뒤져보았다. 플라톤이나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경이로움이 어디 있다는 건지!’ 하며 답답해했다. 책 속에도, 책 밖에도 답은 없었다. 매일매일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뜨거웠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아빠의 서재로 향했다. 책이나 대충 읽으며 저녁까지 시간이나 때울까 싶어 얇은 책을 꺼내 들었다. 무심히 넘기던 페이지에서 한 문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읽은 순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


‘나는 무엇이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를 통해 내가 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을 타인에게 설명하거나 스스로 인식할 때, ‘나는 ~이다’ 같은 서술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나는 여자다’, ‘나는 서울에 산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같은 표현들처럼 말이다. 이처럼 나라는 주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서술어가 모여 하나의 주체를 완성하는 셈이었다. 지금까지 나도 그러한 사실들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런데 책은 매우 중요한 통찰을 덧붙이고 있었다. 바로 우리를 정의하는 그 서술어들이 타인과의 차이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며, 그 차이는 은근한 위계를 형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라는 문장은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서술어의 보이지 않는 힘이 의식에 침투하면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채, ‘남보다 조금 더 나은’ 명사를 얻으려 애쓴다. 책은 이 지점에서, 고정된 명사에 매달릴수록 진정한 자신에게서 오히려 멀어지는 역설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나는 무엇이다’라는 정의 속에서만 나를 찾으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점수, 학점, 체중, 통장 잔액. 그간 내 삶은 ‘숫자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성취는 숫자로 증명되는 무엇이었고, 나는 명사로 설명되는 무엇이었다. 꿈도 손아귀에 쥐어야 할 무엇이었다. 마치 돈을 내면 물건을 소유하듯이, 꿈도 그렇게 가지거나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원했다고 생각했던 ‘대학원생’이라는 명사가 과연 진짜 내 욕망일까? 이것도 결국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명사를 얻으려는 욕심이 아닐까?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석사라는 명사를 손에 쥐고 나면 또다시 나를 규정해줄 새로운 명사를 찾아 헤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를 명사로 규정할 무언가를 찾아 영원히 헤매는 과정이 과연 인생일까?


답 없는 물음들이 이어지던 끝에, 나는 아빠가 했던 ‘뭔가가 되는 것'은 꿈이 아니라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가 자신의 꿈이라고 했던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인생'에서, [발견한다]는 그 자체로 동사였다. 대학원 입학을 코앞에 두고 나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마음 그리고 진실과 직면했다. 내 마음은 학문을 연구하는 과정보다도 ‘대학원생’이라는 명사가 주는 막연한 안정감을 더 원하고 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등록금도 납부해 입학은 확정되었지만, 나는 부모님 몰래 대학원 입학을 포기했다. 그 후 덤덤하게 사실을 털어놓자 엄마는 아연실색했다. 아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엄마는 가끔 아쉬움을 내비친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결정이야말로 삶의 터닝포인트였다고 믿는다. 그 선택은 나를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무엇이 되어가는 것’에 집중하게 했고, 이는 곧 삶의 본질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신화 속 시지프처럼. 시지프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영원히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려야 하는 벌을 받는다. 바위가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끝없이 반복되는 부조리한 형벌이다. 우리 일상도 매일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다. 출근, 업무, 육아, 집안일… 매일 반복되는 이런 일들은 때로는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리는 게 아니다. 매일 바위를 굴리는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갖느냐다. 정상만 바라보며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는 ~이다’가 아닌 ‘나는 ~가 되어가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사는 삶에는 부조리한 일상 속에서도 경이로움이 있고, 진정한 꿈이 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도 시지프가 바위를 굴리는 마음으로 쓴다. ‘출판’이나 ‘작가’라는 목표에 매몰되기보다, 그 목표를 위해 ‘오늘 하루도 꾸준히 쓰는 나’ 자체에 집중한다. 성취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매 순간 무언가를 ‘하는 과정’, 무엇이 ‘되는 과정’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으려 한다.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이 불확실한 시간을 견뎌내며 말이다.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쓰는 나’로 존재한다. 완성된 글을 기다리거나 작가라는 명사를 얻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 없다. 지금 여기서, 이 순간에도 나는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빠가 말했던 일상 속 경이로움에 대한 가르침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비 온 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면 생명의 경이로움과 마주한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보면 나도 어딘가로 여행하곤 한다. 마트에 진열된 공산품에서도 하나하나 포장하는 손길마저 느껴진다.


경이로움은 책 안에도, 책 밖에도 있지 않았다. 그것은 생의 과정에 그리고 나의 마음에 있었다.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나의 꿈이다. 나는 매일 꿈을 이루며 새로운 내가 된다. 그래서 나는 꿈이 있는 한 무엇이든 된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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