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만병통치약

PART Ⅳ. 삶의 난제: 아빠의 방정식

by 연우

밤새 울었더니 눈이 퉁퉁 부어버렸다. 사귄 것도 처음이었으니 헤어진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지만 처음 겪는 아픔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냈다. 마음의 허기는 참아도 몸의 허기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라면을 후후 불며 먹는 나를 보고도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뭔 일 있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빠는 맞은편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콧물을 훔치며 라면을 먹는 내내 말이다. 식탁 위 침묵을 먼저 깬 건 아빠였다.


“걷는 게 때로는 만병통치약이다.”


대화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기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가 젊었을 때,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꼬여 풀리지 않던 때가 있었지.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어. 그때 무작정 밖으로 나갔단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헤매며 걸었지. 처음엔 왜 걷고 있나 싶겠지만, 언젠가는 그게 너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거다.”


아빠는 내가 아니잖아. 내 마음을 모르니까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잖아. 나는 아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식사를 해치운 뒤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몸의 허기가 채워지자 마음의 허기가 찾아왔다. 머릿속에서는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또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복 버튼이 눌린 것처럼 이별의 순간만이 재생됐다. 다른 생각을 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생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하루 내내 방 안에서 같은 생각만 하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밤이 되었구나.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여름 밤바람이 살갗에 스쳤다. 그 서늘한 감각이 좋았다. 꽉 막힌 마음을 환기하는 기분이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나는 슬리퍼를 대충 신은 채 터덜터덜 현관을 나섰다. 막상 나오자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다니던 길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스름한 밤, 가로등이 노랗게 물들인 골목을 걷다 보니, 평소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빛바랜 간판의 골동품 잡화점과 작은 꽃가게가 골목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CLOSED 팻말이 붙은 창문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곳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니. 어두워 안이 잘 보이지 않아 다음에는 낮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밝은 대로변에 도착해 있었다.


토요일 저녁답게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습관처럼 챙기던 헤드폰이 없어서 어딘가 허전했지만, 대신에 거리의 소리가 귀를 메워왔다. 삼겹살집에서 흘러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리,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바람이 공중을 가르는 소리, 통화하는 목소리, 횡단 보도의 신호음 소리… 여러 소리의 틈에서 큰 길가를 한 바퀴 돌고 나자, 더는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종일 울고 라면 한 그릇밖에 먹지 않은 탓인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아침마다 잘 잤냐고 문자 보낼 상대방이 없다는 현실. 그 허전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전 내내 개그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넋 놓던 도중, 전날의 꽃집과 골동품 잡화점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끼니를 대충 때우고 집을 나섰다. 가게는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달빛 아래서는 신비롭고 조용했는데, 햇빛 아래서는 온화한 정경을 자아냈다. 같은 공간인데도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대로변으로 나오자 건널목 맞은편에는 아파트 단지들과 어릴 적부터 익숙한 산책로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날 때마다, 차창 너머로만 바라보던 곳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걷자고 마음먹었다.


산책로에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전용 복장을 갖춰 입고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뛰어가는 러너들, 들뜬 표정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 세월의 무게를 지팡이에 의지한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코끝을 스치는 물비린내에 걸음을 멈췄다. 트랙 난간 아래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난간으로 다가섰다. 투명한 물결 사이로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고,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색을 피워냈다. 그 풍경은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자연의 전시회 같았다.


걸어 나갈수록 오감은 선명해졌다. 지면의 감촉, 바람의 온기, 귓가를 스치는 소리까지. 말랑말랑한 트랙과 딱딱한 아스팔트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자동차의 날렵한 소리와 버스의 둔탁한 소리의 차이도 알아챌 수 있었다. 걷는 동안 마주하는 새로운 감각들이 마음을 채워나갔고, 괴로운 기억들은 조금씩 밀려났다.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문득 익숙한 풍경에,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 바로 초등학생 때 자주 가던 놀이터였다. 아파트 뒤편에 있으면서도 학교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수업이 끝나고도 한적했다. 그래서 나에겐 비밀 기지 같은 곳이었다.


새카맣게 잊고 있던 이곳이 집 근처 산책로와 이어진다는 사실에,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라도 된 듯했다.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는 부모, 정글짐 위에서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 위로 뛰놀던 어린 내가 잔상처럼 겹쳐졌다. 그때 그저 사소했을 순간들은 지금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어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모든 것은 추억이 되는구나. 그 생각은 이 아픈 이별마저도 언젠가는 내 추억 속의 한 페이지가 되리라는 예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아빠의 말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빠였다. 그래서 한 개인으로서 아빠가 겪었을 젊은 날의 상처와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빠의 말을 돌이켜보자, 아빠도 아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아빠도 언젠가 방황하는 청춘의 시절을 보낸 젊은이였겠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후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걷는 동안의 나는 현실과 기억,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에 상상의 이름을 붙여보고, 뭉게구름 위에 강아지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다. 까마득한 기억에 잠기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소란은 잠잠해지고 마음은 새로운 풍경으로 채워졌다.


산책은 운동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운동이 격렬한 움직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물리적 치료제라면, 산책은 걷기와 시간이 빚어내는 정신적 치유제였다. 물론 산책만으로 마음의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걷는 동안만큼은, 찰나의 순간에 머무는 나의 존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우연한 발걸음으로 시작한 산책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요즘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무작정 집을 나선다. 복장도, 신발도 상관없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매일 새로운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삶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고, 마음속의 복잡한 미로에서 출구로 향하는 여정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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