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Ⅳ. 삶의 난제: 아빠의 방정식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대학 2년 내내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 윤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윤과 멀어진 것은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며칠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다가, 어느새 몇 달이 지나고, 겨울 방학마저 끝나버렸다.
윤은 그냥 대학 동기가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먹고, 힘든 날엔 번화가에서 맥주도 마셨다. 쇼핑도 함께하고 과제도 함께했다. 연애 고민, 취업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마음 깊이 감정을 나눴다. 생일이면 서로를 위한 작은 파티도 열었다. 2년 동안 거의 매일 만나며, 일상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3월 수강신청을 앞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2년 동안 윤과 함께 맞춰가며 만들던 시간표를 이제 혼자 짜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과 동기들에게 연락해 볼까도 고민했지만, 그러면 윤과의 이야기도 나올 것이었다.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자니 우스꽝스럽고, 그냥 넘어가자니 어색했다. 수강 신청 마지막 날까지도 고민은 계속됐다. 윤을 전공 수업에서 마주친다던가, 팀 과제라도 같이 하게 되면 정말 난감할 것 같았다. 복잡한 상황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냥 혼자가 되자. 그러면 상상 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었다. 복잡한 설명도 어색한 상황도 아예 피하고 싶었다.
마침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학점이 정말 좋지 않았다. 1, 2학년 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평균이 2점대였으니, 남은 2년은 정말 열심히 해야 했다. 이참에 공부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학업에는 더 유익할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했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도 합리화했다. 윤과 같은 과목을 듣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첫 학기에는 그 걱정이 온통 머릿속을 채웠다. 첫 수업 날마다 심장을 달래며 강의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희한하리만치, 남은 2년 동안 단 한 번도 윤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마치 우리의 시간표가 서로를 피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엇갈렸다.
'어디야? 나 자리 맡아놨어.'
2년 내내 매일같이 받던 문자가 오지 않는 현실이 문득문득 낯설었다. 3시간 연속 강의가 있는 날이면 입안이 바짝 말랐다.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탓이었다. 가끔 과 동기들을 캠퍼스에서 마주치기도 했지만, 안부 인사 몇 마디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들이 윤과의 관계를 물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그 누구도 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걸까. 그 어정쩡한 침묵 속에서 나는 더 외로워졌다.
등하교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은 무료했다. 원래도 동아리나 단체 활동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몰입'과 '집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술자리가 사라지자 타인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흩어졌던 정신은 오롯이 내면으로 향했다. 분산되었던 에너지는 고스란히 학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다. 강의실에서 혼자 앉아 교수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하루의 모든 일과가 친구와의 약속 대신 오롯이 나를 중심으로 짜였다.
차츰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다. 어느새 ‘혼자’는 내게 가장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첫 학기를 보내던 마치고, 나는 처음으로 장학금 수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 이후로도 나는 4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처음엔 상위 6% 안에 겨우 턱걸이했지만, 마지막에는 최우수 장학금까지 받아냈다. 고학년 나는 저학년의 나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고, 그 경계선은 내가 '혼자'를 받아들였던 순간과 맞닿아 있었다.
문제는 졸업식을 앞두고 다시 찾아왔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졸업을 앞두고 다들 친구들과 함께 메이크업을 받고 사진을 찍으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긴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캠퍼스를 홀로 오가며 지낸 나에겐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누구와 사진을 찍을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거는 것도 쉽게 못 하는 성격이라, 대뜸 안면만 튼 동기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 찍자’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또 혼자 캠퍼스에서 서성이는 상상 속 내 모습은 또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학교생활은 이미 성적표와 장학금으로 증명됐고, 졸업식에 가지 않아도 졸업은 확정됐다. 굳이 졸업 동기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회피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이 감정을 지나치기로 했다.
“졸업식에는 안 가려고.”
무심하게 뱉은 말에 아빠는 잠시 멈칫하더니, 콧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천천히 꼬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할 듯 말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던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와 헛기침했다. 뭔가 말하고 싶다는 아빠만의 신호였다. 거두절미하고 졸업식에 가라는 말에, 나는 당황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졸업은 서류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아빠는 나지막이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식(式)’이라는 말 속에는 의식(儀式)이 담겨 있다. 의식은 특별한 날을 여느 날과 구별해주지. 인생에는 몇 안 되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어. 졸업식은 사 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특별한 날이야.”
평생 외출을 꺼리고, 사람을 피하던 아빠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낯설었다. 머리로는 아빠의 말을 이해했지만, 막상 졸업식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 피울 수가 없었다. 아빠가 졸업식에 가겠다며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던 아빠가 대학 졸업식에는 오겠다며 양복까지 맞췄으니, 댈만한 핑곗거리조차 없었다. 나는 졸업식 당일에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되기를 바랐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졸업식 당일, 바람 한 점 없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른 봄 졸업을 맞은 ‘코스모스 졸업생’인 나는, 학과 사무실에서 졸업장을 받고 부모님이 전해준 꽃다발을 안은 채 천천히 대강당을 향해 걸었다. 평소 늘 지나다녔던 익숙한 공간이 그날만큼은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복잡한 마음으로 졸업식을 마쳤다. 대강당에서 나오자 엄마와 아빠가 나를 반겼다. 양복 차림의 아빠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나처럼 홀로 서성이는 다른 졸업생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주변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웃는 다른 졸업생들은 엄마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엄마는 아빠와 나를 꽃밭 앞에 세우고 핸드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둘이 언제 또 이렇게 사진을 찍겠어. 오늘 같은 날 많이 남겨 놓자.”
아빠는 어색해했지만, 그 역시 주변의 소란에 개의치 않고 우리 가족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외부 시선을 신경 쓰는 건 오로지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복을 입은 나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눈빛에서는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 아빠의 든든한 존재감,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순간,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셋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선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정돈했고, 엄마는 꽃다발이 잘 보이도록 내 팔을 잡아주었다. 사진사는 “하나, 둘, 셋”하고 외쳤고 셔터 소리가 났다. 우리는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사진사는 몇 번이고 아빠에게 “아버님 좀 웃으세요.”라고 지시했다. 사진기 앞에서 우리는 어설프게 웃었고 사진 또한 어설프게 찍혔다. 순간 묘한 감정이 차올랐다. ‘가족사진 붙이기’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혼자서 앨범을 뒤지다 실컷 울었던 기억, 결국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에 내 얼굴을 오려 붙였던 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음 한쪽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는 순간, 내 안에 자리했던 불안감마저 옅어지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졸업식 날이었지만, 나는 그날 4년이라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든든한 울타리인지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회피는 끝내는 행위가 아니다. 시작조차 막는 덫이다. 만약 아빠의 말이 없었다면 나는 도망자의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다. 매번 어려운 선택 앞에서 눈을 가리고 등을 돌리는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끝은 단지 끝이 아니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시작은 예고된 또 다른 끝이었다. 삶은 그렇게 시작과 끝이 끊임없이 맞닿으며 이어져 나간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지부지 사라지지 않고 삶의 디딤돌이 되어준 것은, 아마도 그날의 마침표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