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잔향> Episode 1

작가의 말

by 은유의 잔향


〈은유의 잔향〉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를 배우다.


사랑의 구조를 해부하다.


나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기록하려 했다.

감정은 언제나 불규칙하고 충동적이지만,
그 안에도 일정한 흐름과 패턴이 있었다.
나는 그 질서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쓰는 문장 하나하나를 계속 다듬게 되었다.
감정이 넘칠 때마다, 끓어오르는 문장을 식혔다.
뜨거운 마음을 그대로 흘려보내면
의미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을 것 같았다.


그 반대의 길을 걸어야지만
내가 찾고자 하는 무언가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의 흔들림,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논리의 언어로 정리하는 일.
감정을 억누르려는 게 아니라,
감정의 형태를 더 명확하게 마주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나는 사랑의 아름다움보다는
사랑이 끝난 뒤의 불안에 더 집중했다.
사라져 가는 마음,
끝나버린 관계의 잔열 속에서
원치 않아도 다시 시작되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들.


늘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조명받기 마련이기에,
조명에서 멀어진 그 반대편,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사랑의 이면에서 피어나는
권태, 슬픔, 그리고 불안의 구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시작과 반짝임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그 끝 이후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감정의 구조화를 통해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 법을 스스로 배우고자 했다.


끝내,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을 정리하는 내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 속의 그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음을
다시 한번 인지할 수 있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순간을 지나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더 성장한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보편적인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은유의 잔향』 시리즈의 서문이자,
사랑이 끝난 뒤의 감정을 구조적으로 기록하려 했던 첫 번째 시도이자 마지막 결산이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불안, 권태, 그리고 회복의 구조를 탐구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논리와 감성의 균형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나는 ‘사랑’을 해석하던 사람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사랑의 잔향을 따라가며 쓴 이 문장들은
결국 나 자신을 복원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이야기를 잠시 놓는다.
하지만 향은 남는다.
언젠가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향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때의 향은,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의 것이기를.


오늘의 잔향 —
Sufjan Stevens – Futile Devices (Doveman Remix)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태어남과 견딤 사이의 숨을 들이쉬며.)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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