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간다는 건, 잃어가는 일일까

<은유의 잔향> Episode 2

by 은유의 잔향

부제: 겹쳐지지 않아도 함께 자라나는 사이


타인의 세계에서

나는 천천히 나를 배워가고 있었다.
모든 만남이 거울이 되고,
그 거울 안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낯설게 빛났다.


‘나’ 아닌 ‘너’를 닮아간다는 건
언젠가부터 나를 잃어버리기 위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곱씹어 다시 생각해 보면,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히려 나의 시야가 나에게 머물지 않아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틈이 없어서 생긴 오해일 수도 있었다.


그때는

네가 웃을 때 나도 웃었고,
네가 침묵할 때, 나 역시 조용해졌다.


빛은 한쪽에서만 오는 게 아니기에
너의 그림자가 내 안으로 번지듯이
나의 온기도 너에게 매 순간 닿았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윤곽을 매만지며
조용히, 조금씩 매일 닮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반대로,
네가 웃을 때, 내가 웃지 않았고
네가 침묵할 때, 내가 소리 내었다.

그 이질감과 불협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느꼈다.


우린 서로의 반사광이었지만
그 빛은 완전히 겹쳐질 수 없었고,

아니, 겹쳐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옳은 일이자 정답이었다.


틈이라고 없을 듯한

존재와 존재의 겹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얇은 틈이 항상 열려 있었다.

그 틈은 ‘나’와 ‘너’의 각자의 존재를 증명하고 대변했다.


멀어진 줄 알았던 날에도
사실 우리는 늘 가까웠으며,

언제나처럼

손끝이 닿을 듯한 거리,
숨결이 겹치는 온도 속에서
매일 푸르게 자라고, 매일 스며들고 있었다.


오늘의 잔향 —

Hania Rani – “Nest”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서로의 빛이 겹치며, 윤곽이 생기던 날.)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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