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잔향> Episode 3
부제: 끝과 시작 사이에 서다
도대체 몇 밤이 지나갔을까.
그 어떤 준비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이었다.
어른이 되는 데는
어떤 서약도, 계획도, 계산도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건이나 의식이 알려줄 거라
막연히 믿고 있었었는데……
내게 어른은
나이가 차서 오는 것도 아니었고,
경험이 충분해져서 도착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예고도, 마음을 고를 시간도 없이
삶이 나를 어른의 자리로 밀어 올렸다.
정말로 그랬다. 물론 그 일부는 나의 선택이기도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다 알기도 전에 사랑했고,
관계를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관계의 안쪽에 들어가 있었고,
삶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삶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어느 순간 나의 자리가 되어있었다.
철없는 날들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날들 사이에는
경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사실 거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거리를 나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준비되지 않은 의지를 바탕으로
강을 건너듯 건너뛰어버렸다.
어른이 될 준비를
해본 적은 없다.
그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여유가 있어서도, 해야만 하는 핑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어떤 책임의 온도가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려던
아주 작은 시도들까지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을 뿐이었다.
그 작은 시도들은 또 다른 방향점이 되었다.
오늘의 잔향 — Agnes Obel – Riverside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첫 결.)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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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