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잔향> Episode 3
부제: 가장 중요한 건 그대로니까.
관계의 붕괴를
처음 경험했을 땐,
바닥이 꺼지는 그 큰 소리가
정말로 귓가에 울렸다.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성급한 선택들을 이어갔고,
그 선택들에 나는
‘복구’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부서진 자리는
비슷한 모양의 무언가로
쉽게 채워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빈자리를 메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곁에 서 있는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단순한 사실을
꽤 오래 모른 채 지나쳤다.
비어 있는 곳에 무엇을 들일지 고민하느라,
정작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수시로 비워두고 있었다.
비슷한 계절이
몇 번이나 돌아오고 나서야
천천히 깨달았다.
진짜를 대신할 모형은 없다는 걸.
결핍은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제대로 마주할 때에만
형태를 잃고 힘이 빠진다는 걸.
더 단단해져야 하는 일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스스로가 기대가 되어야 했고,
스스로가 지탱해야 했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채우기보다,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땅을
너와 나, 우리만의 결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흔들림을 멈추는 일은
새로운 기둥을 세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이미 그 자리에 서 있던 내가
땅이 되고, 기둥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태양은 그대로였다.
흔들린 건 태양이 아니라
그 태양을 바라보는
나의 각도뿐이었다.
오늘의 잔향 — Hania Rani – F Major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흔들림 아래에서 천천히 다져지는 마음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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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