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잔향> Episode 4
부제: 고르게 다져진 땅
자라지 못한 마음의 밑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돌들이 숨어 있었고,
그 돌들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씨앗을 심을 수는 없었다.
큰 돌을 들어내고,
작은 돌을 골라내고,
모래를 섞어
흙의 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
그 모든 과정을
나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일임을
모르던 시절들.
더 나은 사람을 바라기 전에
더 나은 밭이 되는 일이
먼저였다는 사실.
사랑을 잘 짓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는 땅을
고르게 다져야 했었다.
돌을 치우고, 흙을 뒤집고, 물길을 내는 일처럼
나를 고르게 만드는 과정이 먼저였음을
사랑은 떠났지만,
사랑이 지나가며 다져놓고 간 밭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다른 무엇이 자랄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그때의 사랑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나라는 땅이 변화하기 위해
지나가야 했던
필연의 계절이었다.
오늘의 잔향 —
Hania Rani – “Mirroring”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상처가 아니라,
다져진 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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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