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이 생기던 시간

Episode 5

by 은유의 잔향

부제: 반복이 만들어 낸 중심


마음이 먼저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러나 먼저 닳아간 것은 몸이었다.


하루는 무게처럼 내려앉았고,
나는 그 아래에 서 있었다.


피로는 겹겹이 쌓였고
생각은 그 밑으로 가라앉았다.


몸이 지칠수록
마음은 조용해졌다.


슬픔을 붙들 여유도,
불안을 확대할 힘도 없었다.


사람은 무너지기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감정이 나를 삼키기 전에
몸은 먼저 하루를 통과한다.
마음은 그 뒤에서 따라온다.


나는 의지로 선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정해진 방식으로 하루를 닫았다.


반복은 눌린 자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기둥은 세우는 것이 아니다.
오래 버틴 자리에 생긴다.


나는 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래 머문 자리는
결국 중심이 된다.


오늘의 잔향 — Ryuichi Sakamoto – Andata


(이 글과 함께 흐르던 음악.

같은 음형이 조용히 반복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축을 세우던 리듬.
형태는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남는다.)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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