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감정과 마주하는 일

<은유의 잔향> Episode 1

by 은유의 잔향

부제: 사라진 감정의 분실물 보관소


아무리 말을 해도,

소리가,

공간에서 흩어졌다.


단어들이
목구멍을 넘어
입으로 나와

자리 잡아보기도 전에
사라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그 형태를

알 수 없었다.

눈도,

코도,

입도,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손을 내미는 용기보다,

손을 내리지 않는 용기가

더 오래 남는다.


그날의 공기와

멈춘 손끝의 온도가

아직, 기억 속에 머문다.


이러한 기억은, 제 아무리 잊으려 해도

노력과 상관없이

내 안의, 나도 모를 어떤 부분들을
수도 없이 계속 흔들었다.


이 기억,
이 흔들림.

언젠가,

이 온도가 다 식어도.


아무런 힘과,

역할이 사라져도.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더라도


그때의 공기만큼은

그 삶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진짜였던 것들에 대한

여운 하나만은

놓지 않고서, 움켜쥐기를.


오늘의 잔향 —
Angus & Julia Stone – Santa Monica Dream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사라지는 것들의 법칙에 관하여.)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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