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은유의 잔향> Episode 1

by 은유의 잔향

부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뜨거움이 사그라들었지만,
그 잔열은 아직
나를 태우고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인 듯했지만

아무것도 같지 않았다.


변한 게 없는데,

뭔가 다 사라진 것 같았다.


불이 꺼졌는지,
아직 타고 있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여전히,
같은 자리임에도
그 안의 것들은
다 공기가 되어
증발해 버렸다.


익숙함이 따뜻함을 가장했고,
무관심은 평온의 얼굴을 빌렸다.

그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몄다.


아직 남은,

미세한 열은

힘이 없어 더 애처로웠다.


닿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들이

뒤엉켜 길을 잃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들을 집어삼키며,
애써도 늘
마음이 체해 있었다.


이렇게
습관처럼 남아버리는 일.


“이대로면 괜찮은 걸까?”


질문엔 대답이 없었다.


식은 마음의 잔열이

텅 빈 공기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작게 타오르는 불씨가 남았단 사실은

고통이 되어 나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오늘의 잔향 —

Daughter – Doing the Right Thing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예쁘고 반짝이던 것들이 휘발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언제나 가장 짧은 순간에 머문다.)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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