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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주 Dec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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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27.2023

 익히 들어온 저명한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할 때 혹은 도서나 영화를 볼 때 우리가 그 예술작품을 통해 느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번뜩이는 아이디어,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 놀라운 움직임이나 미장센, 필력 등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중점으로 두고 감상하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면서 소비하는 입장인 필자로서는 섬세한 만듦새와 완성도, 그리고 관객에 대한 배려에서 전문성의 수준을 느끼고 또 그런 부분에서의 프로다움을 기대한다.     

 섬세한 만듦새는 흔히 ‘디테일의 차이’라고 말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의 다름을 말한다. 공연을 예로 들자면 등, 퇴장의 순간이라든지 배우 간의 아주 간발의 호흡, 무대에서 보이는 부분이라고 지정한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의 연출 등 크게 공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지만, 신경 쓰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것들을 말한다.

 완성도는 앞서 말한 섬세한 만듦새와도 이어지는 내용인데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다. 음향과 조명, 무대의 시각적 연출과 의상뿐만 아니라 공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의 통일성도 의미한다. 완성도는 섬세한 만듦새의 밀도로부터 나온다.

 마지막으로 관객에 대한 배려는 소외되는 관객이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많은 값을 지불 한 사람은 당연히 공연을 즐기기에 가장 쾌적한 자리에 앉는 것이 맞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지불한 돈이 적기 때문에 공연의 반만 보고 왔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 때문에 창작자는 어떤 자리에서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오롯이 전달되도록 무대나 동선을 세팅해야 한다. 자리의 편안함의 정도나 음향의 질 혹은 거리로 인한 배우의 생동감 등의 것은 감수하더라도 공연의 서사와 핵심은 모두가 비슷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지 않은 자리는 애초에 설정하지 않는 편이 좋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마찬가지이다. 부대시설이나 공연장의 동선, 주의사항에 대한 알림 등이 비장애인에게만 맞춰져 있다면 역시 공연의 내용이 좋더라도 반감이 생긴다.

 그러나 많은 공연과 전시가 코로나라는 팬데믹 시기를 겪고, 자본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필자가 말한 위 세 가지를 상당 부분 삭제해 가고 있다. 심지어 vip 좌석에 앉는 사람들은 이용하는 부대시설과 대기하는 장소도 다르며, 그래 사실 이 정도는 백번 양보해서 돈이 좋구나 할 수 도 있겠지만, 회전 무대로 되어있으니 어느 자리에서도 무대를 즐길 수 있다고 광고했으나, 무대의 정면은 변하지 않고 도대체 내용이 읽히지 않아 중앙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반응으로 무대 위 내용을 예측해서 공연을 관람하게 하는 형태는 기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의 지속성을 위해서 수익구조는 당연히 너무 중요하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기 쉽고 더 자유로운 예술 표현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채워졌다면 더 이상의 욕심은 독이 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예술이란, 작품이란, 관객과 창작자의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수익구조를 지키면서 모두에게 균등한 작품의 즐김을 나눌 수는 없을까.


         

 아주 예전부터 기대했던 공연을 보고 아쉬워서 몇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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